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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열표

E열표

3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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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ooks ・ 2021

Avg 4.0

한번 피면 끝장을 보게 되는 책이다. 중간에 덮을 수가 없다. 초반엔 전기적 사실을 통해 배울 점들을 기대하며 천천히 읽어나가다 예상치 못한 어떤 지점에서 골이 띵할 정도의 과격한 유턴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이 책의 정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인두겁을 쓴 짐승이라 생각해도 될만한 자를 통해서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 순간 인식의 전환이 생겨난다. 이를테면 비난하려 펼친 손가락이 구부러져 물음표가 되고 나를 가르키게 되는 것이다. 니체는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또한 나를 보게될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적지않은 경우 우리는 반면교사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곤 한다. 만악의 근원이라 믿었던 혼돈이 알고 보면 가장 큰 축복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맡기게 만든다. 그것은 실로 위대한 항복인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내 안의 어딘가가 영적으로 열리는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인간은 항상 모르는 것에 이름표를 붙인다. 그것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려는 공허한 시도며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모종의 심리적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이름이나마 일단 붙이고 본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 행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자신의 성적 취향에 이성애자라는 이름표를 붙였고 그 때문에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됐다. 성급하게 붙인 그 이름표 때문에 그녀는 분명 더 큰 혼란과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됐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편견없이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분류하고 정의 내리려는 시도가 결국 더 큰 혼돈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편협하고, 그 편협한 인간의 정의는 항상 무언가를 소외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