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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만든 작품이 아님을 아는데도 싫어할 도리가 없는 작품들이 있다- . . (스포일러가 있긴 하지만 관람하시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생각된다. 누구나 아는 밴드지만 맴버들의 사생활은 비교적 덜 알려졌고, 히트곡만 해도 수십 곡이니 극적인 순간에 아무런 곡이나 배치해도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딱 좋으니까. 핵심맴버인 프레디머큐리가 지극히 영화적인 삶을 살았고 인물 자체가 영화적이라는 것 또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시작하기도 전에 선점한 하나의 우위다. .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소재의 장점들은 뒤집어 생각하면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120분 동안에 퀸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기엔 무리가 있다. 전부를 담아내기엔 다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퀸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매력요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가기엔, 창작자의 입장에선 너무 아까웠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대목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밴드의 결성, 성장, 정점을 지나 위기에서 다시 재도약하는 과정만을 담기에 머물지 않고 다소 무리하게 이러한 메인 플롯안에 프레디머큐리라는 개인까지 담으려 시도한다. 이 부분에 보헤미안 랩소디의 패착이 있다. 영화는 프레디머큐리라는 개인을 주로 프레디의 성소수자적인 면모로 보여주기를 택한다. (아마도 영화의 감독인 브라이언싱어 본인이 성소수자이기에 이러한 소재를 깊이감 있게 다뤄낼 수 있으리란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영화는 퀸의 이야기와 수많은 명곡의 탄생과정들을 보여주는데 힘이 겨워 프레디 머큐리 개인을 심도 있게 그려내지 못한다. 프레디의 양성애성향은 프레디 개인의 내면을 그려냈기보다 프레디 커리어의 위기를 그려내는 데에 사용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묘사가 걸린다. 매리와의 애틋한 관계는 어느 정도 잘 묘사가 됐으나 동성애인, 혹은 동성친구인 짐 허튼 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 프레디가 we are the champion을 부르는 씬에서(어느 노래를 부르는 씬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영화는 메리와 짐의 얼굴을 번갈아 잡아주다 후에는 동시에 보여주게 되는데, 매리의 얼굴이 나올 땐 그동안 쌓아온 감정으로 인해 환희와 슬픔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지만 짐의 얼굴이 나올 땐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기는커녕 왜 저 인물이 저 중요한 장면에 하나의 단독쇼트를 차지하고 있지 라는 의문만 들 뿐이다. 이는 키스 1번과 전화번호부로 짐을 찾는 정도로 프레디의 동성애적인 면모와 짐과 프레디의 관계를 묘사하려했던 감독 싱어의 책임이다. 양성애로 프레디 개인을 보여주는데 주력 했으면 매리와 프레디의 관계 못지않게 프레디와 짐의 관계 또한 중요한데, 영화는 마치 그 사실을 잊은 듯하다. 어쩌면 애초에 프레디와 짐의 관계는 매리와의 관계에 비할게 못된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 그 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영화 속 프레디는 주변인물 거의 모두와 갈등을 빚는다. 초반부에는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고 중반부에 가서는 아내 매리와의 갈등이 있다. 후에는 맴버 전원, 매니저, 폴, 등등 이정도면 프레디와 마찰이 없는 사람이 더 적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속 모든 갈등은 라이브 에이드 라는 공연 하나에 모두 해결된다. 매리가 찾아와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하란 말 한마디에 자신의 삶을 더 타락케 하는 폴과의 연이 정리되고, 맴버들과 다시 뭉치게 되고 그 동안 못 찾던 짐을 찾게 된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 마저 프레디가 라이브에이드 공연을 한다고 말을 전하는 장면에 있다. 라이브에이드공연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이긴 하나, 영화 스스로가 제기한 갈등들을 너무 손쉽게 해결한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 이다. . 위에서 언급한 영화의 단점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전기 영화에서 개인을 심도 있게 그리지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화의 실수이자 결함이니까. 영화를 보고 프레디머큐리라는 인물이 크게 와 닿았다면 그건 아마도 감독의 공이 아닌, 프레디를 연기한 배우 라미말렉의 공일 것이다. .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들이 있다. 우선 노래가 그렇다. 오프닝부터 퀸의 노래의 위력은 확실히 들어나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무대에 서는 장면으로 끝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정말 별거 없는 몽타주임에도 불구하고 somebody to love 라는 명곡으로 인해 관객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중반부에 나오는 보헤미안 랩소디 ,we wii rock you 등의 탄생과정 씬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이지만, 노래가 가진 고유의 힘으로 인해 꽤나 인상적인 장면이 됐다. 후반부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에이드 시퀀스가 노래의 덕을 봤다는 건 구태여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 . 물론 노래자체가 가진 힘이 팔 할 이상이긴 하지만 영화가 노래를 배치한 방식도 괜찮은 편이다. somebody to love 특유의 두근거리는 드럼비트 부분을 오프닝 시퀀스에 배치하여 시작부터 관객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으며, 앤딩을 we are the champion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벅차고 감동적인 느낌으로 마무리 한 점도 인상 깊다.(물론 이건 실제 라이브에이드공연 마지막 곡이기도 했다.) 중반부에 나오는 보헤미안 랩소디, we will rock you의 활용도 적재적소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관객이 듣고 싶어 하는 퀸의 노래 거의 대부분을 들려주면서 영화가 음악을 과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는 건 분명 눈여겨 볼만한 영화의 성과다. 퀸의 노래 자체가 치트키에 가까운 수준이니 누가 퀸의 영화를 만들던 음악은 제대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좋은 식재료로 좋은 요리가 당연히 나오는 게 아니듯이 퀸의 노래 또한 제대로 써야 효과가 있는 것이고 영화는 그 부분에서 충분히 제몫을 해냈다. . 글을 쓰는 도중에도 장점보다는 단점들이 계속 머릿속에 밟히는 이 영화를 결코 걸작, 혹은 수작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퀸의 열렬한 팬으로서 프레디머큐리가 스크린에서 되살아난 광경을 바라보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독 싱어에게는 전작 액스맨 아포칼립스에 이어 또 한 번의 실망을 하게 됐지만, 일단 그러한 실망감 보단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다들 잘 만든 영화가 아님을 알고도 싫어할 도리가 없는 작품들이 몇 있을 텐데 내겐 이 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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