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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찾는 영화가 보여줄 건 더 이상 없으리란 예상에 코웃음 치는 미친 시나리오- . (스포일러) <어스>부터<행복한라짜로>,<기생충>,<허슬러>,그리고 <나이브스아웃>까지 보아하니 아무래도 올해의 화두는 사회 계급에 관한 문제인 것 같고, 그에 대한 하고픈 말을 장르로 우회하여 전달하는 것은 어느 덧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사실 <나이브스아웃>이 꽤나 사회정치적 성향이 강할 거라곤 사전에 미처 예상치 못했던 점이다. 말 그대로 <나이브스 아웃>은 꽤나 사회적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민자로서의 마르타의 위치를 강하게 대두시키더니 추리물의 긴장감이 다해지는 무렵마다 끊임없이 부르주아 계급층들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도록 만든다. 에콰도르, 우루과이, 브라질 등등 겉으론 마르타를 위하는 척 하지만 실은 그녀의 진짜 국적조차 알지 못하는 상류층 인물들의 위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좌우세력간의 토론, 인물들 간의 계급적 지위를 180도 전복시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엔딩 등등 이 정도면 추리 영화이기 이전에 계급을 통해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하나의 사회 실험극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 헌데 개인적으로는 <나이브스 아웃>을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본 영화가 시종 스릴 넘치게 전개되는 추리물의 형식에 사회 계급적 맥락을 성공적으로 앉혔다는 느낌은 든다만 그 사회적 함의가 앞서 언급한 숱한 영화들에 비해 심도 있는 것이었냐고 하면 개인적으론 전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며 무엇보다도 <나이브스 아웃>을 사회적 맥락을 우선적으로 하여 바라본다면 그건 영화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사회 계급적 알레고리로서의 영화이기 이전에 잘 빠진 한 편의 미스터리 추리 영화이며 그 사회적 맥락은 영화를 다 본 뒤에 생각할 여지 정도를 가볍게 남기는 것에 족했다고 생각한다. . 계급적 우화로서는 잘 모르겠으나, 한 편의 추리 영화로서 <나이브스 아웃>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연출도 좋고 연기도 좋지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싶어지는 부분은 영화의 각본이다.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은 범인 찾는 밀실 서스펜스 영화가 요즘 시대에 별 특별한 게 있을까 라는 관객의 염려를 가볍게 무시한다. . 초반 20분가량은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가 제시된다. 의문의 살인사건, 잘은 모르겠으나 왠지 비범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탐정, 거짓말을 하는 3명의 용의자. 관객된 입장에서 탐정 블랑과 합심하여 3명 중 누가 범인인지를 검토하던 도중에 영화는 판을 180도 뒤 엎어버린다. 영화가 보여주는 플래시백에 근거했을 시 우리에게 범인은 마르타였다는 뜬금없는 실체가 대번에 공개된다. 미스터리에 기반을 두어 추리극을 이끌어오던 영화는 이를 기점으로 하나의 서스펜스 극으로 급격히 변모한다. 이는 초반부터 영화가 마르타를 관객의 동일시 인물로 설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이제부터의 구도는 할란이 마르타를 위해 쓴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각본과 이를 파헤치려 드는 블랑의 추리능력 싸움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마르타가 행한 사소한 실수들은 할런의 각본을 헐겁게 만드는 동시에 영화가 구사하는 서스펜스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벌써 범인을 공개하면 어떡하냐는 우려가 들만도 하지만, 영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 블랑과 함께 사건을 추리하던 관객은 이제 마르타의 편에 합류하여 블랑의 수사가 더디기를 응원한다. 그렇게, 긴장감이 자자한 일련의 장면들이 이어지던 도중에 영화는 또 다시 구도를 전복시킨다.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됨으로 인해 할런의 플레이어로서의 마르타 vs 미지의 인물에게 고용된 블랑. 이었던 영화의 구도는 마르타 vs 저택의 식구들. 의 구도로 급전환되는데, 이 구도가 진정 흥미로운 까닭은 이러한 대결이 단순한 다대일의 대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저택의 식구들 사이에서도 좌우로 편이 나누어져 삼파전의 구도가 형성된다는 부분이고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랜섬이 갑자기 상대적 약세로 보이던 마르타의 세력에 합류해 구도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춰주고 있다는 점이다. . 여기서 미리 말하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 랜섬이 진범일 것을 추측했다며 본인의 추리력을 뽐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자면 범인을 정확히 추리한 것 까진 좋다만 그걸 가지고 자신이 영화에 이긴 것 마냥 우쭐댄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 영화에 패배한 것이란 생각이다. 누가 범인인가를 묻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브스 아웃>의 방점은 범인에 찍혀있지 않다. <나이브스 아웃>의 목표는 현란한 각본을 통해 이야기의 구도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관객에게 추리물이 선사할 수 있는 유희의 어느 극단을 안겨주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나이브스 아웃>은 (사실상 가짜 범인이지만)범인을 공개하는 초반부터 관객에게 범인에 집중하지 말아달라고 외친 것에 다름 아닌 영화일 것이다. . 영화의 각본이 진정 훌륭하게 느껴지는 대목은 수번의 구도 체인지를 형성하는 와중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오간다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마르타&랜섬 vs 좌파 가족 vs 우파 가족. 이 된 구도에서 영화는 미스터리를 추가하여 신선한 서스펜스 구도 속에 미스터리 추리극의 고전적인 재미까지 가미한다. 그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과연 블랑을 고용한 이는 누구일까, 블랑을 고용했다면 이 사건을 미리 예측한 이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마르타를 시종 협박해오는 미지의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아마도 이 둘은 동일인물인 것인가 등등. . 이처럼 여러 번의 굴곡을 거친 영화는 탐정의 장광설이라는 탐정 추리극의 다소 고전적인 형식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말하자면 상황과 공간의 고전적 설정을 현대의 배경을 통해 이색적인 전개로 신선하게 풀어내다 끝내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마무리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가득한 여러 사회 계급적인 모티브는 영화에 깊이감을 부여해 이 추리물의 짜릿한 재미가 휘발되지 않도록 제 역할을 다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결혼이야기>, 그리고 <기생충>의 삼파전으로 예상했던 올해의 각본에 아무래도 <나이브스 아웃>이 강력한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 같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24851&logNo=221732005405&navType=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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