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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

정환

7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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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i

Movies ・ 2000

Avg 4.2

눈을 뜨면 들리는 소음과 나의 죄책감이 엮여 비극으로 느껴지던 하나, 그런 비극이 존재하기에 눈을 감아도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세상 하나. 나만 보이지 않을 나의 이면 하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나만의 진실 하나. 그렇게 다른 하나들이 모여 둘을 이루는 나의 이야기. 이제는 다 컸다고 말할 그날을 기다려야지. . . 양양의 뒤통수를 콕콕 찌르며 놀리던 소녀들의 모습. 그때부터 였을까. 그 소년은 스스로는 절대로 보지 못할 뒷모습을 보려 노력한다. 할머니에게 끝까지 말을 하지 않던 양양은 아직 어리기에 천둥으로 시작된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눈높이로 보고 있는 어른들의 뒷모습이 너무도 궁금할 뿐이다. 잠 못 드는 밤,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눈물을 흘리던 틴틴이지만 끝내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잠에 들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틴틴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의 잔잔한 폭풍을 맞이했다. 스스로의 양심과 갈등하며 다가오는 문제에 결심하고, 때로는 다가오는 것들을 끌어안았다. 세상이 이리도 불공평했던 까닭은 세상의 한가지 측면만 바라봐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 개를 동시에 보지 못한다. 카메라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하나를 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지 역시 두 개를 동시에 담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보이는 하나의 또 다른 일상을 통해서 얻는 것 말고도,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하나를 보게끔 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흔히들 영화를 보며 2배의 삶을 경험한다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무와 구름이 있기에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라면, 우리 역시 볼 수 있는 것과 끝내 볼 수 없는 것이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존재이다. 이 세상은 참 공평하게도 각각의 양면을 이치로 삼았다. 현실에 슬픔이 있는 반면 기쁨도 있는 법이고, 비밀이 있는 반면 진실도 있는 법이다. 남자와 여자,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있을 어느 것도 겉과 속, 앞과 뒤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결혼식으로 시작한 영화가 누군가의 장례식으로 끝을 낸 것도 마찬가지겠지. 흘러가는 시간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듯하지만, 나는 그런 자비 없는 시간에 뒤처져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만 늘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감과 동시에 다가오고 있으므로 잠 못 들지도 못한 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대신, 편안히 눈을 감아 지난 날의 후회따위 잊어버릴 새로운 기회를(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인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정확히 말해 시간을 맞이함과 동시에 떠나보낸 시간도 많아질수록. 눈을 감을 줄 아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만으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우린 그저 “다 컸나 보다”라고 느낄 때까지 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지. 이 늦은 밤에도 여전히 많은 불빛과 소음들로 이 밤의 도시를 대표한다. 여전히 켜져있는 건물의 불을 보며 그 안엔 지칠대로 지친 하루를 끝내지도 못한 가여운 사람들이 있다고. 여전히 깜깜한 도로에 목적지도 모를 그저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이미 하루의 끝을 넘어선 시간에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울리는 엠뷸런스의 소리를 들으며 이 밤이 누군가에겐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겠다고. 여전히 잠 못 드는 채로 눈을 뜨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감으면서 펼쳐질 정적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세계로의 초대이다. 눈을 떠도 1분짜리의 하루가 반복되는 것에 지칠 나에게 눈을 감는다는 의미는, 종종 눈을 감을 때만큼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고요한 무지의 세상은 가여운 우리를 위한 신의 선물로도 느껴지곤 한다. 눈을 뜨거나 감아도 이처럼 세상은 공평하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면 내가 차마 보지 못했던, 마음이 닿지 않았던 그곳이 분명 있을 거라고 인식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제서야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나와 하나, 혹은 둘. 그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비로소 하늘은 아름답게 보일 테니까. 양양의 말처럼, 이 아름다움은 스스로 알아내야 하겠지만, 아직 많은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 때, 조용히 나의 시간을 기다리면 되겠다고 다짐한 후 난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니 눈을 뜨면 들리는 소음과 나의 죄책감이 엮여 비극으로 느껴지던 하나, 그런 비극이 존재하기에 눈을 감아도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세상 하나. 나만 보이지 않을 나의 이면 하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나만의 진실 하나. 그렇게 다른 하나들이 모여 둘을 이루는 나의 이야기는 시간이 다가와 맞이하고, 흘려보내며 그렇게 숙성되어간 다음 비로소 아름다워질 것을 생각하며 이제는 다 컸다고 말할 그날을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