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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원

문희원

4 months ag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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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r's Light

Movies ・ 2024

Avg 2.7

일부 평론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영화의 '지지자'들은 <에스퍼의 빛을> 두고 얘기할 때 이전까지의 정재훈 감독의 비범한 커리어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 프로젝트의 기나긴 과정 및 결실을 치켜세운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 담화에서도 모더레이터인 송경원 평론가는 "이 영화가 극장개봉까지 상영되는 과정 자체가 대단한 하나의 여정 같았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러나 감독의 이름 및 프로젝트에 얽힌 복잡다단한 과정을 일절 알지 못하는 제3자인 관객은 과연 그 "대단한 과정"의 일부로 초청받을 권리/자격이 있을까? GV 내용에 따르면, 정재훈 감독은 이것이 여러 청소년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써서 다양한 형태로 혼합 및 변환해 보고 궁극적으로 영화로 촬영하기까지 하며 스토리텔링에 대한 여러 실험을 해봤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감독은 스스로 영화 속 세계관에 얽힌 복잡한 설정들을 상세하게 풀어내는데다가, 배우들은 이 과정을 통해 그 시절의 자신들이 어떤 생각 및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는 감동적인 회고까지 남겨주었다. 그렇지만 이 내용은 모두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취득한 후일담일 뿐이다. 백지 상태의 관객이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 <에스퍼의 빛>을 보았을 때, 과연 이 기나긴 여정 속 복잡한 세계관과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 및 그곳에 담겼을 감정과 경험을 과연 체험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곧 관객 저마다의 개인적인 해석을 곁들여 스크린 너머의 스토리텔링으로 확장되려면 관객이 그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는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에스퍼의 빛>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하는 데에 일절의 관심이 없다. 엄청난 양의 텍스트 안에 담긴 각종 다양한 설정들과, 절대 구분하거나 파악하기 불가능한 개개인의 서사는 물론이고 한순간도 이야기의 형태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게 함으로써 영화는 관객을 스토리텔링의 영역에서 철저히 소외시킨다. 이래놓고 영화가 끝난 이후, 감독과 배우들은 이 작업이 각자에게 얼마나 길고 감동적인 여정이었는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마치 영화를 본 우리도 당연히 그 똑같은 감동을 마땅히 느꼈으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사전에 'TRPG'나 '자캐커뮤'에 대한 개념도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영화는 당연히 이 개념을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 구축된 영화의 형식에 따라 극을 진행시킨다. 물론 이 개념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토록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고 사적인 소재의 활용을 얼마나 쉽게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RPG의 개념은 플레이어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고 영화에서도 이에 따라 실제로 텍스트의 형태로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물어보는 순간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선택지가 나오는 순간마다 관객이 가담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어느 순간에 왜 이런 선택지가 나오지도 모르고, 결국 어떤 선택지가 결정되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영화가 정해준 답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놓고 GV에선 그 RPG에서 이야기를 자유롭게 확장해나가는 자유도 및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여전히 관객이 참여할 지점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에스퍼의 빛>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비범하고 괴랄한 괴작"이라고 삼는 데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영화의 리뷰 예고편을 보면 굉장히 산만하게 끊임없이 반짝이는 이미지 위로 영화에 대한 각종 (혹평 위주의) 반응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심지어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는 영화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메인 예고편에서도 김병규 평론가의 "모험적 괴작"이라는 짤막한 코멘트만 등장할 뿐, 따로 이것이 대체 어떤 영화인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렇게 온갖 바이럴한 마케팅으로 신비적이고 괴랄할 거 같은 인상은 일부러 한참 심어주고, 정작 영화를 풀어놓고 보면 관객과 함께 완성해야 할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의 여정이라고 포장하려고 한다. 과연 <에스퍼의 빛>은 관객의 담론을 수용하고 이를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영화인가? 프로젝트의 출발점과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 정신에 대한 포부는 철저히 소거한 채 굉장한 '괴작'이라고 각인되길 바라는 이상한 욕망만 남아있진 않은가? 이것이 그들만의 아름다운 워크숍과 여정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이라는 제3자에게까지 전달되어야 할 이유, 근본적으로 시청각적 매체인 영화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의 시간이 길아질 수록, 나와 소통을 거부하는 영화와의 거리는 더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