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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나쁜 여자 ; 욕구 불만의 여성이 보트 위에서 꾼 축축한 꿈> 영화만 놓고 봐서는 이 작품이 남성중심적이라는 비난은 황당해 보인다. 수많은 한국 영화를 보았지만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무방비 상태의 남성을 덮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다. 이 영화는 '남성-물고기/여성-물'의 구도를 구성한다. "꼭 지 거시기 크기 만한 (물고기만) 잡았네"라는 다방 레지의 대사나, 낚시꾼이 섹스를 하다가 낚시대가 움직이면 달려가서 물고기를 확인하는 장면 등에서 꿈틀거리는 물고기가 남성성을 상징함은 분명해 보인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이 영화의 남성은 처음에는 낚시대에 물고기 모양의 철사만을 무기력하게 걸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데, 여성이 다가와서 낚시대에 미끼를 걸어주자 비로소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 시작한다. 남성이 낚시 바늘을 목에 걸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여성이 낚시대로 구해주는 장면과 겨우 살아난 남성이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입을 바둥거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물 속에서 죽지 않고 숨쉬는 법'을 가르켜 주지만, 남성은 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의 허락 없이는 남성은 섬에 감금되어 맘대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여성의 욕망을 위해서 남성이 사육된다. 이렇게 남성-여성 관계를 완전히 전복시켜 놓은 급진적인 작품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남성의 옴므파탈적인 매력으로 인해 다른 경쟁자 여성(다방-레지)을 간접적으로 살인하게 되고, 서로 같은 살인자가 된 두 커플은 섬에 모터를 달고 자유로운 망망대해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물-여성)은 (물고기-남성)을 감금하는 동시에 해방하게 하는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오버랩이 암시하듯이 그것은 욕구 불만을 겪고 있는 어느 불안한 여성의 꿈이다. 피에 젖은 두 낚시 바늘이 합쳐져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 그것이 김기덕이 그리는 날 것의 비린내 나는 사랑의 형태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촬영과 미술의 담당자(김기덕 본인이 직접)가 '연출 및 각본'보다 먼저 영화 화면에 등장한다. 이는 이 작품이 숏 한 장 한 장을 미술적으로 구현하는 데 공을 드린 작품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이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안개 속의 롱테이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유럽 예술 영화들처럼 효과적으로 구성하며, 특히 영화에서 섹스 장면을 세번의 점프컷으로 표현한 장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초창기 영화 이후에 처음보는데, 구로사와 기요시는 고다르의 빠돌이로 유명하므로 고다르 영화를 보고 점프컷을 베꼈다고 해도, 고다르 영화는 본 적이 없었을 김기덕 감독이 어떻게 그런 장면을 만들었을지 그의 천부적인 천재성이 놀랍기만 하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돈을 주고 하는 섹스에 대한 경멸로 가득차 있는데, 잘생긴 남성을 두고 경쟁하는 여성들은 서로 자신이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돈을 서로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남성들이 택하는 섬의 색갈은 그 인물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데 (마치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Mr.Color로 인물들이 구성되듯이) 자본주의 돼지들이 택하는 보라색과 순수한 연인들이 택하는 노란색이 색채의 대비를 이루며, 노란색의 섬을 칠하는 두 페인트 브러쉬가 서로를 애무하는 숏은 그 어떤 섹스씬보다 더 에로틱하다. 후반부의 '브러쉬-수풀-음모'의 이미지 병치는 물 밑바닥에서 피어난 잡초같은 사랑을 형상화한다. '날카로운 철사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다니 아저씨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다방레지의 대사는 아마 스스로에게 쌓인 한으로 창작을 하는 김기덕이 스스로에게 내뱉는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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