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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뛰어난 장편소설의 탁월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으나 굳이 하나만 특정지어 말하라면 나는 ‘평화로움을 묘사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겠다. 윌라와 그녀의 딸 에일린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대목을 보자. 그들은 다시 외곽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식료품을 부엌에 정리해놓고 위층에 올라가 나들이옷을 벗고 얇은 면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뒤, 각자의 방에서 뜨거운 여름날 공기가 들어오게 창문을 열어둔 채 낮잠을 자다가 오후에 깨서 욕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물을 살짝 묻힌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와 말없이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내놓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편평하고 넓고 낮게 드리워진 지평선 위로 하늘 색깔이 짙고 어두워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86~87p 그저 심상한 한 문장으로 이들의 삶이 지금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삶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이대로도 좋지 않겠냐는 작가의 엷은 미소가 느껴지기도 하는데⎯등등 여러 측면에서 하릴없이 저물어가는 인생의 고즈넉함을 절묘하게 조망해내지 않았나 싶었다. 이런 대목은 다만 이뿐 아니어서, 네 여자가 잔디밭에서 냅킨으로 얼굴을 덮고 누워 자는 장면이라든가 가축용 수조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이 작가는 평화로움을 제대로 묘파해낼 줄 아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이 평화란 등장인물 개개인이 삶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낸 뒤 그것을 반추하는 현재에 와서야 비로소 그들에게 체감되고 있다는 것일 텐데, 작가는 어떤 개인의 이야기도 소설의 부속품으로 허투루 소비하지 않으면서 그들 각자의 삶과 살아오는 과정에의 선택들을 존중하고 있다. 그 선택이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정될 수 없는 것. 암만 돌이켜도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후회가 자꾸만 밀려올 때 인간은 끝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처럼 이 소설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마치 그녀들 곁에 누워 잔디밭에서 뒹굴면서 읽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이 편안하고 안락한 소설의 저류에는 기묘한 열기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소설을 쓸 때, 특히 최근에 들어서 더 사로잡혀 있는 하나의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삶에는 생각보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상하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 간혹 폭죽처럼 일생일대의 사건이, 삶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거대한 사건이 펑펑 터질 수도 있겠으나 그조차도 찰나이고 그 이후는 또다시 그것을 견뎌내는 심상하고도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들이 연속될 뿐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에는 쓸쓸한 비감과 안온한 행복이 함께 섞여 있는데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내 인생 이대로 좋은가’와 ‘그럼에도 좋다’가 뒤섞인 느낌이랄지…… 하여간 소설이나 영화나 어떤 이야기 매체를 소비하는 우리의 동인조차도 결국 이 삶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문득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그래서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강렬한 막장 스토리를 원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 <축복>이라는 소설은 조금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무료한 현재⎯대드 루이스나 메리, 윌라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저물어가는 현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그들의 과거사를 반추할 때에도 자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래서 이 과거가 잠재적으로 이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담담히 되짚는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삶의 곡절을 다 겪고 난 뒤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곱씹어야 할 것인지를 예시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내공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건의 복판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사건의 저변에서 이제는 황폐해진 복판을 바라보는 서술. 작가는 대드 루이스의 대사를 통해 이렇게 전언하고 있다. 정말 별것 아니었는데 말이야. 대드가 말했다. 그뿐이라고. / 뭐가 말이에요, 여보? /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182p 행동의 쓸모 있고 쓸모없음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앞둔 사람뿐일진대, 소설 속에 묘사된 일련의 갈등들, 그리고 그 갈등을 모두 감당하여 살아내고 이제는 죽어가고 있는 인물을 만들어놓고도 그럼에도 좋다, 고 긍정하는 소설과 그 소설을 쓴 작가는 얼마나 이 삶을 사랑하고 있을 것인가. 하여 내게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이와 같지도 않겠고 이와 같이 쓸 수도 없겠으나 적어도 <축복>을 읽은 독서 경험이 내부에 스며들어 나의 글쓰기에 어떤 촉매가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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