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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번방 사건, 대전 10대 뺑소니 사건 등이 바로 떠오르는 소재와 스토리. 자세한 설명 없이 허술한 구석도 있고 꽤나 작위적인 설정이지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장치들이 나름 치밀하고 디테일해서 완전 허무맹랑하게만은 안 들리며 꽤 흥미롭다. 또 현 시대 실제 많이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연루 강력범죄들이 극에 나름의 사실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대사도 내가 본 청소년이 나오는 드라마 중 가장 리얼하다. 에피소드나 사건들을 연결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장치들, 또 그에 따라 조금씩 무너지는 개연성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재밌고 좋은 각본이라 생각한다. 현 사회의 청소년 세대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 그 자체의 선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의식. 이 드라마는 청소년의 일탈이나 탈선에 있어 ‘모두 어른들 탓이다, 너흰 잘못한 거 없다’ 하는 그런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얘기 따윈 하지 않는다. 독거 청소년 주인공 ‘오지수’의 동기인 생계 부족 이라는 요소도, 주인공이 비양심적인 사업을 벌이게 되는 말그대로 동기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점. 작가진은 등장인물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애초에 그런 이유로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며 시청자에게 감성팔이를 한다든가 등장인물들의 비양심적 행위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게 한다든가 미화한다든가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청소년들이 점점 이런 일에 익숙해지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묘사를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질문까지도 파생해낸다. 2. 연출이나 편집이 나름 스타일리시하다. 음악도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쓰이고 있고, 구도나 앵글 등 촬영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간혹 등장하는 상상이나 꿈 장면들이 몽환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이 이 드라마의 주제와 스토리 전반에 드러나는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인 느낌을 잘 강화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았던 연출적 면모는 스토리 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등장인물들의 나쁜 짓들을 절대 정당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시청차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에게 연민이나 정을 느끼게 하다가도, 그들의 비도덕적 행위의 비참한 최후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정확하게 직시하게끔 한다. 그런 연출을 통해 그들의 추악한 행위를 시청자들이 합리화하거나 응원하게 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따라 동기, 심정이나 행위 자체는 납득하게 하여 흥미진진함과 재미는 지켜내고 있다. 효과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3. 김동희 배우는 평소 그리 연기를 잘한다는 이미지는 없었는데 의외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순진한 이미지와 악한 이미지 양 쪽에 모두 잘 어울리는 비쥬얼이 배역에 잘 스며드는 느낌. 겉으론 찌질한 미련곰탱이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남자 여우 형 캐릭터, 극중 표현으로는 지가 강아지 새낀 줄 아는 늑대 새끼 캐릭터를 아주 잘 표현한 것 같다. 박주현 배우는 신인인 것 같은데 마스크도 독특하고 목소리도 좋고 연기도 잘해서 정말 매력 있었다. 약간 싸이코형 캐릭터가 박주현 배우의 연기력과 만나 포텐이 터졌다고 생각한다. 정다빈 배우는 비쥬얼은 좋았고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가 은근 러블리한 매력이 있었음. 남윤수 배우도 연기가 나쁘진 않았다. 캐릭터는 요새도 저런 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허세충 일찐이라 제일 싫었음. 최민수, 박혁권, 김여진, 임기홍, 김광규, 심이영, 박호산 등의 조연배우들은 캐릭터에 맞는 호연을 보여주었다. 이외에 가장 인상깊었던 두 조역 배우가 있다. 조건녀들 모여 사는 곳에서 리더(?)처럼 보이는 그 여자 배우랑 바나나 조폭 아내 배우. 진짜 리얼한 연기를 보여줘서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서예화 배우와 백주희 배우라고 한다. 4. 10부작이니만큼 늘어지는 템포와 호흡, 조금은 무리한 전개와 허술한 부분들이 흠이다. 그래서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황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소위 발암, 고구마라 일컫는 답답한 특정 캐릭터들과 전개가 약간의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5. 세상에 ‘인간’이란 단어만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말이 있을까. 때로는 아주 추악한 백해무익의 존재로, 때로는 빛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인간’ 된 도리를 잃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잔인함과 영악함, 치밀함의 도에 있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해버린 10대 청소년, 혹은 인간성이 결여된 우리들 모습의 현 주소. ‘인간’이란 종은 본래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인 것일까. 어쩌면 그 본성을 억누르고 짐승과 다른 ‘인간’이 되기 위해 받는 것이 바로 ‘교육’인 것이 아닐까. 청소년 아니 모든 인간에게, 진정으로 제공돼야 할 수업은 국영수가 아니라 어쩌면 그야말로 ‘인간’이 되는 법, “인간 수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아릉이는 어디 갔을까 +) 그나저나 마지막에 뜨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면서 1388 뜨는 거 볼 때마다 살짝 좀 뜬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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