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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건축을 통해 설명한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의 방식과 가장 닮아있지 않을까? 다양한 지식을 나의 생각으로 묶는 책, 근데 영화를 곁들인. 하지만 다양한 지식을 담은 만큼 산만한 것도 사실이다. / 문화 유전자(이기적 유전자)가 지리적 영향에 따라(총균쇠) 동서양에 따라 차이를 보임을 설명(사피엔스)한다. 역시 큰 책은 읽어놓으면 배신하지 않는다. / <기억에 남는 문장> 1. 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대변한다. 2. 어떤 존재가 사물을 인지할 때는 자신보다 낮은 차원의 것만 완전히 인지할 수 있다. #미치오 가쿠, ‘초공간’ 3차원의 인간은 3차원의 공간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지만. 기억력과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의 도움으로 망막에 잡힌 그림을 연산해서 이어 붙여 3차원의 공간을 구축한다. 기억력 덕분에 우리는 3.5차원 정도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3. 건축이 조각과 다른 점은 건축은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물체를 만드는 행위라는 점이다. 인간은 건축물이라는 물체를 만들고 그 물체가 만든 빈 공간(보이드)을 사용한다. 4. 현대 도시의 축대는 조선 시대 때 기단이라고 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비, 기단의 높이, 권력, 건축 공간에 대해서 잘 그려 낸 사례다. 영화를 보면 가난한 송강호 가족은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에 살지만,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카메라가 옮겨지면 집들이 모두 거대한 축대 위에 올라간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5. 서양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동양 건축에서는 이렇게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의 내부와 바깥 경치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았을 때 시야에서 윗부분을 프레임하는 것이 서까래와 처마다. 처마 부분은 외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의 프레임이니, 장식이 들어간다면 이 부분에 했어야 했던 것이다. 6. 피타고라스는 “수가 형태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이후 서양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7.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피타고라스의 수학이 만나서 만들어진 ‘변종 사고’라고 할 수 있는데, 수학적 사고가 그의 철학에 미친 영향은 ‘이데아’의 개념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머릿속에 있는 이데아 같은 관념적 완전성은 수학적 사고에서나 가능하다. 수학적 개념은 다분히 현실 세상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완전성이다. 8. 체스와 바둑 서양의 문화는 양식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한다. 반면 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9.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이 두 가지 기술 혁명이 전 세계의 건축을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이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10. 나누어진 학문의 각 분야가 깊게 발전할수록 학과들 사이에는 점점 더 높은 벽이 생겼다. 11. 관념이 실재를 이끌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12.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 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13. 과거 우리가 ‘나’를 표현하고 과시하는 방법은 물건을 소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품을 사고, 좋은 차를 끌고 다녀야 했다. 지금은 그 돈으로 뒷골목에서 우동을 먹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다. 그렇게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소비하면서 나를 표현한다.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가상공간 안에 있는 내 SNS 공간뿐이다. 우리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는 이유도 있다.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나 자신은 데이터화된다. ‘나’라는 존재가 비트로 구성된 데이터화되는 현실은 원자로 구성된 몸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데이터로 대체되어 가는 나를 찾기 위해 더욱 더 물질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문화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14. 디지털과 융합해 가는 이 시대에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인간성을 찾아 왔다. 디지털과 융합될 시대는 기술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개인이 사라지고 획일화될 가능성은 더 높다.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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