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빈

로지코믹스
Avg 3.8
칸토어(집합론, 논리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학) 프레게(현대논리학의 표기법, 수학은 논리학의 일부) 힐베르트(기하학의 토대, 수학에 앞으로도 모를 것은 결코 없다) 러셀(수학원리, 과학적 논리학) 비트겐슈타인(그림이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나, 중요한 것은 말할 수 없다) 괴델(불완전성의 정리, 토대는 존재할 수 없다) . 수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인간의 도구는 완벽할 수 없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논리학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탄생한 인류 최후의 도구, 컴퓨터. . 토대를 찾으려는 비극은 괴델 이후로 종결되었나. 앨런 튜링과 폰 노이만은 정말로 그들을 잇고 있는가. . 결국 이성 역시 감정처럼 근본부터 불완전하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이성과 감정은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바람직한 비율은 어떻게 정해질까. 이성이 주가되어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이 주가되는 문제는 어떤 것들일까. 그것을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 현재 인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단계에서 벗어나 '알 수 있는 것을 아는' 극단에 있는 듯하다. 그럼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알 수 있는 것을 알고자하는 기계, 컴퓨터는 또다시 모르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강한 인공지능의 추구는 어쩌면 힐베르게의 선언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토대를 찾을 수 있을까? . 모든 이정표가 저마다의 이유로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을 때, 현대사회의 표류자로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