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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김현승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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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Books ・ 2015

Avg 3.7

정호승 시인의 시집은 지금껏 내가 읽었던 윤동주, 백석의 시집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게 그는 1950년에 태어난 현대시인이기에 지금껏 내가 읽은 시들에 비해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그의 시가 세련되었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 활용이 아주 휼륭하기 때문이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눈길,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 설해목, 굽은 나무 등 일상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시였고, 그의 시는 자연스레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서정적이면서도 또렷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의 묘사력을 닮고 싶다. / 정호승 시인의 시는 '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 '오늘은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등의 역설적 표현들이 눈에 띈다. 그에게 사랑이란 슬프고 기다림만이 있는 부정적 상황인가? 그의 대표 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품고 있다. 정호승은 '기쁨보다 값진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도 나오듯 기쁨은 슬픔 없이는 무의미하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기쁨의 진정한 기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죽음에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책만 보더라도 부정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사례가 많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에서는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했고, '나무에 대하여'에서는 '굽은 나무에 그늘이 더 많이 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는 아예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그늘이 없는 사람',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앞서 언급한 정호승 시인의 유려한 시각적 이미지 중에서 '푸르다'는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사랑하는 '너'는 푸른 하늘에 살고, 사랑을 아는 고래는 푸른 바다에 살며 내 몸에 쌓인 독은 사랑하는 '너'와 나를 해친다. 사랑하는 '너'를 해치는 독의 푸르름은 나머지 두 푸르름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정호승은 슬픔을 사랑하고 아픔을 껴안을 줄 아는 시인이다. 시 '사랑에게'에서 푸른 독은 너를 아프게 하지만 화자는 그것을 인지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평생을 다바쳐 독을 버리겠다 다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독마저도 아름다운 푸른 색으로 물들인다. / '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직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지 - 모두 드리리 - '눈 녹은 물에 내 간을 꺼내 씻다가 눈 녹은 물에 내 심장을 꺼내 씻다가 그만 강물에 흘려보내고 울다 몇날 며칠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 '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 까닭 -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략)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 / 군대에서 읽은 책 (02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