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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작한 동명의 단편 애니메이션(한국에서는 SICAF에서 <행복로 이야기>로 상영되었습니다)의 장편 버젼입니다. 1970년대 태어나 현재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던 '린수치'(계륜미)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행복로'에 살던 주인공은 고향에서 머물며 자신이 그간 잊고 있던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과거가 아니라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한국 만큼이나 격동에 휩싸였던 대만의 현대사와 함께 말이죠. 영화는 린수치가 현재 시점에서 고향에서 겪는 여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족과 함께 처음 행복로의 마을로 이사온 이후 자라면서 겪었던 과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기본적으로는 <써니>처럼 과거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영화는 결코 '그리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던 각종 불합리한 일들, 그때는 몰랐었던 사회의 씁쓸함들, 그리고 장제스로 상징되는 대만의 장기 독재와 민주화 운동-민진당의 부흥-해바라기 운동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같이 엮어내며 과거의 사건들을 다각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역시 그저 가족을 푸근한 존재로 그리는 대신 서로 반목하거나 갈등하는 지점을 짚어내고, 여성을 그리는 방식 역시 주인공의 외할머니나 어머니를 비롯해 주인공의 친구-그리고 주인공이 이르기까지 시대에 결코 자유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주체와 고민을 잊지 않는 상으로 충실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담고 있는 메세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션'으로서 인물과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겠죠. 2D 디지털 셀의 기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어린아이인 주인공이, 그리고 다양한 고민과 생각에 빠진 주인공의 시선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과 함께 다채롭게 변하는 외형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민주화 운동'과 같은 무거운 주제도 폭력적인 부분을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드러내는 대신, 작품의 전체적인 톤과 조화를 이루며 참신한 비유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러면서도 당대의 시대상이 담고 있는 함의를 놓치지 않고 표현을 하죠. 이렇게 <해피니스 로드>는 기본적으로는 대만 현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동시에 '개인'에게도 결코 시선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작중 주인공의 연령대인 동시에 감독의 연령대인 40대 대만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리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풀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대만과 비슷한 문화권과 가족 관계, 격동의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 역시 작품이 담고 있는 대만의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죠. 연출, 메세지 양면에 있어 보편적인 공감을 잡으면서도 자신만의 특색을 지닌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입니다. 추신. GV에서 감독의 말에 따르면, 원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극영화를 미국에서 전공했다 합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며 이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고. 대만은 애니메이션 산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하고, 단편 위주로 제작되는 곳이라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을 하는 것이 그다지는 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온갖 제반적인 어려움을 이기고서 무척이나 잘 나온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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