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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홍

홍홍

8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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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Books ・ 2017

Avg 4.0

너무 잘 쓴 소설은 감상평을 남기기 힘들다. 제5도살장이 그렇다. 나는 트랄파마도어의 동물원에 납치된 사람처럼 이 소설을 읽었다. 커트 보니것은 이 책의 서문에 이 소설을 정신분열적인 방식으로 썼다고 서술했는데, 그야말로 제5도살장은 조현병 환자의 중얼거림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병의 원인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의 나열 속에 온전히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단 한 명의 죽음보다 동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국가 간의 충돌, 역사의 과정으로 그려짐으로써 수많은 주검이 포탄에 맞아 쓰러진 건물처럼 무생물의 몰락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전쟁에 징집된 군인들은 마치 공장에서 생산된 총알처럼 소비된다.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에게 군인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총칼이다. 그들은 소모품이다. 그들은 병력이라는 이름의 숫자다. 역사의 페이지에서도 그들의 죽음은 숫자로 표현된다. 이 전투에서 몇 만 명이 사망했다, 같은 설명들. 누구도 그 죽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빌리 필그림이 미쳐버린 게 아닐까. 나라도 미쳐버리겠지. 개인적으로 전쟁 관련 소설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예외가 있다면 그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제5도살장이다. 잘 쓴 소설의 힘 같다. 피곤해서 머리가 아픈데도 새벽 4시까지 이 책을 읽어내렸다. 커트 보니것은 제5도살장을 쓴 후 평생을 그 영향하에 살았다는데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이런 엄청난 소설을 썼는데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