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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통하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해요. 바로 '진실은 현재에 있다는 것', 때문에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차게 살아가는 청년과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과 회한으로 살아가는 노년 모두 진실이 아닌 가짜의 삶, 즉 진실의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인시던트는 바로 그런 그림자로서 살아가는 가짜들의 삶을 보여주는 SF적 공간이예요. 실재하는 자기자신의 삶은 다른 곳에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인시던트 속의 자신이 발산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받고 살죠. 이 부분을 보시면서 '그럼 인시던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불쌍해서 어떻게 해! 지옥에서 사는거잖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사실 이건 감독이 의도한 영화적 장치일 뿐이니 뭐. 인시던트의 존재들은 실재하는 존재들과 달리 영원한 지옥도에 살지만 실제 우리가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러한 인시던트에 갇힌 채 살아가는 존재들과 다를 바 없다는 표현을 한거라고 생각해요. 감독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비교적 노골적으로 보여줘요. 영화 초반 경찰의 총에 다리를 맞고 죽어가는 카를로스는 동생에게 자신은 한 번도 인생을 즐기고 살지 못했으니 넌 인생을 즐기고 살라는 식의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죠. 여기서 뭔가 촉이 오지 않으시나요? 물론 동생은 이런 형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하고 미래로 상징되는 탈출의 희망을 품을 뿐 현재를 살지 못하죠.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결국 동생은 연쇄되는 인시던트를 끊지 못하고 또 다시 새로운 인시던트를 열고 맙니다. 물론 이번엔 과거를 사는 노년의 모습이겠죠.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서는 인시던트의 연쇄를 끊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인 것 같아 현실의 우리와는 다르네요. 인시던트 속의 존재는 실재하는 존재의 그림자일 뿐이기에 그렇게 설정한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영화 초반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할머니가 에스컬레이터에 누워 계신 장면이 있었는데, 이 또한 인시던트의 연쇄를 암시하는 장면이겠네요. '현재를 즐겨라' 철학에서 오래되고 확고한 명제죠. 이런 인문학적 밑바탕 위에 감독의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괜찮은 SF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문제와 해답이 좀 맥락 없이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이어지는 등 안타까운 점도 있지만 장르 특성에 따른 재미나 내포한 그릇의 크기가 생각보다 걸출해서 만족스럽게 봤어요.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초반에 총에 맞아 죽는 형이 동생에게 인생을 즐기라는 이야기를 하며, "너는 이미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여기서 총에 맞아 죽는 악몽을 꾸지만"이라고 말을 덧붙이는데 만약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에 대한 단서를 모두 주었다면 아마 총에 맞아 죽는 카를로스와 천식으로 죽는 여동생은 이른 죽음으로써 인시던트의 지옥에서 탈출하는 인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극 등장인물 중 단 둘만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현재를 즐기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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