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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은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 '사사로운 리스트' 글에서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두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상한 방식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스트우드의 입장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공화당원이자,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던 인물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설리>는 어째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영화인가? 오바마 정권 출범이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벌어진 'US 에어웨이스 1549편 불시착 사고'를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벌어진 여객기가 추락하고,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하는 과정과 함께 사고 경위를 밝히는 청문회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사고 이후 여객기의 기장인 설리는 종종 비행기가 맨해튼 스카이라인에 그대로 충돌하는 꿈을 꾼다. 극적인 재난의 스펙터클에 가까운 설리의 꿈 장면과는 달리, 실제 사고 당시의 설리와 승무원, 승객, 구조대 등은 무척 침착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질서 정연하게 여객기에서 빠져나와 지상으로 이동하는 모습, 구조대는 물론 배를 지원한 민간인들의 일사불란하게 움직임, 남은 승객이 없는지 확인하고 마치 일상적인 퇴근을 하는 것처럼 여객기를 떠나는 설리의 모습을 사무적인 톤으로 담아낸다. 청문회에서의 설리의 태도와 영화의 태도는 동일하다. 설리는 사고의 과정을 사무적으로 정리하여 건조한 톤으로 이야기한다. 청문회를 기다리며 바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악몽을 꾸거나, 조깅을 하는 뒷모습을 제외하면 영화 속 설리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감정적이지 않다. <설리>가 보여주는 질서 정연한 재난의 현장은 남한의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가 목격했어야 했던 기적의 상황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 사고를 최소한의 재난으로 유도하는 것이 국가 시스템의 존재 이유이다. <설리>는 그 시스템이 가장 아름답게 작동한 순간을 담고 있다. IMAX 카메라는 그 육중한 기적의 순간을 관객의 눈 앞에 들이붓는다. <설리>는 이 지점에서 보수적이다. 리버럴 정권 하에 벌어진 재난은 보수적인 시스템을 통해 기적을 맞이한다. 악몽으로 표상되는 재난의 트라우마를 떠안고 사무적인 태도로 청문회에 참여하는 설리의 모습은 그 자신은 영웅이라 불리길 거부할지라도 영웅적이다. 영웅의 등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견고한 국가 시스템의 존재. 지극히 보수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설리>는 그러한 시스템을 지지하는 이상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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