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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만큼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다. 이렇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외로운 것인줄 몰랐다. . 며칠 전, 성추행 사실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한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다른 숨겨진 진실이 있다며 울부짖는 지지자들도 이해할 수 없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이 백만명이나 된다니 기가 찬다. . 고인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인정하나 그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그의 씻을 수 없는 죄를 회피한 성범죄 피의자이다. 그의 비겁한 도망은 피해자는 물론, 그의 유족과 지지자, 1000만 서울시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 그 뿐인가. 이렇게 제대로 된 수사나 처벌도 없이 단 몇시간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세상을 등진 그를 애도하고 있는 진보세력의 움직임은 인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지우게 만들었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박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XX새끼’라고 답했다는 뉴스가 떴을 때, 분노를 넘어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향해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언론이 "인권변호사로서, 시민운동가로서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제기했던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서 그조차 자유롭지 않았다'는 논평을 냈을 때, 그의 범행을 마치 불가항력의 선택으로 묘사하는 언론을 보며 인간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동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이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뻔뻔하게 글을 쓰는 것을 보며 진보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 그의 자살이 순직 혹은 자기희생으로 인한 죽음이었던가. 억울하다면 수사를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내면 될 것이고, 부끄럽다면 남은 여생을 피해자에 평생 속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그는 피해자에게 단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피해자는 그에게 영영 사과받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는 ‘관노와 잠자리를 한 이순신’으로 비유될 인물도, ‘여자 잘못 만나 정치 인생 말아먹은 불쌍한 우리 시장님’도 아니다. 그는 단순히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한 순간에 무너질까 두려워 자살로 연민을 구걸한 철면피일 뿐이다. 연민은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연민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 성희롱이라는 개념으로는 처음으로 재판에서 승소한 변호사 박원순. 혹자는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엄청난 엿을 선물하고 떠났다. 역겨운 위선자들. 진보라는 거죽을 쓴 파렴치한들. 이 일만큼 내가 리버럴인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사건이 없었다. . . 그의 비겁한 자살은 앞으로 권력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족쇄로서 기능할 것이다. 수백번 고민하고 힘겹게 피해사실을 알렸을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친 사람들처럼 그녀의 신상을 파헤치려는 후안무치들과 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안타깝다며 조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지독히도 들어왔던 “꽃뱀”이라느니, “정치권의 공작”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이제 신물이 난다. 서울시장장으로, 그것도 5일이나 국민 혈세 들여서 성범죄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장례위는 박 시장이 "한 인간으로서 지닌 무거운 짐마저 온몸으로 안고 떠났다"며 국민들에게 동정을 구걸한다. 이러니 피해자는 가해자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입장 표명도 못한다. 겨우 몇마디 의견을 밝혀도 고인에 대한 예의도 없냐느니, 당당하면 얼굴 공개하라며 돌을 던진다. 정말 전형적인 개한민국답다. 그 뻔한 레퍼토리는 신선함이 떨어져 악취가 풀풀 풍긴다. . 분명히 진저리 나게 반복되어온 패턴인데, 많이 접해서 무뎌져야 하는데, 그래도 아프다. 미칠 듯이 아프다. 화가 나고 좌절한다. 피해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같은 여성인 것만으로도 울분이 일고 눈물이 나는데 그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을 고발한 김지은씨를 보아라. 이름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렸음에도 그 진위를 의심받았으며, 법원에서 이미 유죄로 확정된 범인을 옹호하는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최근 안희정 모친상을 두고 “‘여자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가볍게 이햐기하던 쓰레기들에게 분노한다. ‘불륜’이라느니, ‘안희정 부인이 피해자지 그 년이 왜 피해자냐.’라는 인간까지. . 이 사건이 1심에서 무죄로 선고되었을 때의 법원 판결문 전문을 읽어보면 판사들 스스로도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탓에, 사회적으로 '성폭력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가해져야 할 사회적·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가 부담해야 할 형사법적 책임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한다.”라고 기술한다.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은 판례상, 미성년자나 장애인에게 주로 적용되어 왔고, 일반적인 성인 여성에 대해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법원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법리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사건의 맥락을 읽지 못한 아둔한 판결을 내린 탓에,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과 시민 사회에서 강도 높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비판 행렬에 박원순 또한 “판사가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고 지적하며 동참했었다. . . 박원순의 자살이 가지고 온 후폭풍은 거세다. 일단 곧바로 나의 일상생활에 침투했다. 나는 박원순의 죽음이 보도되었을 때부터 그의 자살이 매우 충격으로 다가왔으면서도 내일 출근했을 때, 라떼를 한 사발씩 들이키는 꼰대이자 성인지 감수성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을 우리 부장님이 할 개소리가 걱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박원순에 대한 배신감과 내일 내가 마주하게 될 무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늦게 자리에 앉은 그는 어제의 충격적인 사건을 가십처럼 소비하고 있었다. 자동적으로 이어폰을 찾고 있던 찰나, 그는 자랑스럽게 “과장님께 000씨(남자 직원)와 내 파티션을 엄청 높여 달라고 말하고 왔어.”라며 어김없이 헛소리를 지껄였다. 분노와 실소, 개탄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일부) 남성들은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펄쩍 뛸 때는 언제고, 저 말이 담긴 의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감히 입을 놀린다. 너, 펜스 룰이라고 아니? 그리고 그게 왜 비판받는 지도 아니? . . 하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 더러운 손가락을 놀리는 인간들을 보면 인류애가 사라진다. 악은 평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지극히 평범한 필부필부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성추행 정황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중립기어 박는다는 인간들은 변호사 출신 박원순이가 피의자가 죽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자체가 종결된다는 것을 모르고 했던 자살이었을지 묻고 싶다. 설사 조희연이 말하는 '자신에게 엄격한 그'의 성정으로 인한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의 성폭력 행위 자체를 떠올린다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는 지금이라도 가려진 진실을 알려 자신의 존엄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그의 무책임한 선택으로 그녀는 이유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모았을 그 더러운 문자들과 사진들. 그녀는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했고, 그녀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을 때 경찰 수뇌부는 이를 가해자에게 알렸다. .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고인을 가르켜 "열정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며 박원순을 떠올렸다. 추악한 그의 성폭력 범죄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형국에 참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순수하고 부끄럽다기에는 뇌가 없는 파렴치한 범행이었다. . 형 아우 하면서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것일 때 합리화될 수 있다. 범죄를 감추고 서로 봐주기를 위한 호형호제는 사악한 일이다.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이해찬 개인으로서는 그럴 수 있으나, 성범죄자를 이렇게 국민의 세금을 써가면서 추켜세울 일은 아니다. 민주투쟁하던 그때 그 시절 빛바랜 박원순만이 여당과 진보세력의 동지인가.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그들의 동지로 여겨지지 못하고 버려진 것인가. 이러니 많은 자칭 진보라는 인간들이 시류를 못 읽고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도태되는 것이다. 한심한 인간들. . 국민을 기만하고 많은 가치있는 업적을 뭉갠건 박원순 자신이다. 끝까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려없이 떠나버린 무책임을 덮어주고자 한다면 잘난 그의 당과 지지자들이 해야한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려가 먼저다. 박원순이라는 인간의 발자취에 대해 논하고 싶다면 그의 밑바닥인 지금부터 논해야한다. 피해자에 석고대죄하고 상처받은 여성들과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그것이 염치고 도리다. . 이 허망한 세상을 정세랑 소설의 문장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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