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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자씨 여전히 화가 나 있다. 그래도 하는 얘기 들으면 무시할 수는 없다. 내용은 너무나 좋지만, '내말이 틀려?'라고 계속 묻는 듯한 조급함이 아쉬워서 쩜오 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대로 살지는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의지의 존재 유무는 중요치 않다.우리는 그것을 자유롭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혹은 그렇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을 뿐이다. 하나 더 보탠다면,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도 있다. 2 "이렇게 해라!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 라는 식의 뻔뻔스러운 합리화가 만연해진다. (...) 일반적으로 사회가 부당하면 자연히 개인이 사회에 수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회의 부당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체념한다. 사회를 붙들고 무언갈 말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느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태도를 장착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어떤지와 무관하게 '내가 내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3 서울대 학생 A와 B는 삶의 궤적이 흡사하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은 '놀라 자빠질' 일이 아니다. (...) 소수의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 명문대 학생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는 과장된 추론이 아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C와 D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펙 관리에 철저했고 어학연수쯤은 기본으로 갔다 왔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은 인간의 의지로 설명할 수 없다(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로 나갈 의지가 생기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출신 대학은 취업, 연애, 결혼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전체 자산의 크기를 결정하고 자신의 자녀에게 투자할 사교육의 크기를 결정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실이 엄연히 있으니, '어떤' 대학에 간다는 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한국 사회의 대학 서열화 문제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면,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격차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차이 나지 않았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회적 인식차가 상식적인 수준이었다면, 창의적인 삶을 선택해도 사회 안전망 덕택에 경제적 궁핍에 빠질 확률이 지금의 현실보다 낮았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교육에 승부를 걸지 않으면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빚어낸 슬픈 결과일 뿐이다. 4 실험(화난 원숭이 실험)의 맥락처럼, 사람들은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 그저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져버리기 일쑤다. 당신은 그런 상황의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학창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 시험에 나오는 거만 공부하면 된다!" 라는 말을 무수히 들었을 것이다. 기업이라는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괜히 소란 일으키지 마라 ! 매뉴얼에 따라 안전한 걸 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5 그렇다면 습관적으로 'must'가 남발되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권위에 복종하는 비율이 높지 않을까? 한국은 압도적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당신은 "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성공하려면 이것을 반드시 해야 해!" 등의 논리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450V의 전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출생부터 대학 졸업까지 평균 자녀 양육비는 3억1000만 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이는 사교육이 '가학'수준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의 부모들은 원래 이런 성향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부모들 역시 주변의 무수한 'must'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6 어떤 사회든 질서 정연함과 자유분방함의 차이가 있고 이것은 'must' 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이어진다.똑같이 '압박'을 해도 사회마다 그것을 체감하는 정도는 다르니 한쪽은 이를 '조언'으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한쪽은 '협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앞서 언급돠 애시의 '동조 실험'을 방송국에서 재연한 바 있다. 이때, 오답에 동조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혼자만 다른 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남들은 정상이고 저는 비정상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어요." 특정한 판단의 근거에는 이처럼 무서운 인식이 들어 있다. '혼자만의 선택'을 하는 걸 '비정상'으로 느끼는 건 보편적 인간 심리가 아니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이해하는 경향이 무척이나 강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일 뿐이다. 7 요즘도 동성애가 익숙한 개념이라 하기 어렵다. 성적 지향과 성적 취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취향은 개인의 선호를 말하고 지향은 타고난 방향성을 뜻한다. 이를 혼돈하면 '혐오할' 취향도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아마 30년 전에는 '더' 폐쇄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00년 전의 사회에서 이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을 할 수 있었을까. 특히나 그 시절에는 가족이 많을수록 노동력이 증가하여 모두의 삶이 유리해지는 농경 사회였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생육하고 번성해야" 마땅한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니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은 위험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톨릭에서 사제의 자격에 여성을 제한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 직업을 남성만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톨릭의 입장은 단호하다. 성서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다 '남성'인 이유는 '사목' 활동은 남성이 적합하다는 하느님의 뜻으로 보아야 한단다. 얼마나 우스운 논리인가?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2000년 전 이야기이다. 8 공룡의 존재를 몰랐듯이, 인간의 성적 지향이 다양하다는 걸 이해할 사회적 여건이 없었던 시공간적 배경은 외면한 채, '과거에' 집필된 성서를 현재의 시점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종교학자 오강남은 일침을 가한다. "(...) 그런데 문제는 레위기에 동성애뿐 아니라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던 많은 일들을 금지하고 이런 것들을 어기면 돌로 쳐 죽이거나 기타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새우나 바닷가재, 오징어같이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해물을 먹는 것,(...)키 작은 이, 습진이나 버짐 등 신체의 결함을 가진 이가 제단에 가까이 하는 것 등등이다.(...)" 9 아프리카에서 끌고 간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은 다음 '자유'를 주면 이들이 하루아침에 '판검사'라도 된다는 말인가?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동을 하며 먹고살아야 한다. (...) 많은 이들이 '그럴 만하니까' 가난한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는' 사라진 이상, 가난은 '게으름'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식이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최근까지도 결코 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하지 못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하기에 상호 간의 결혼은 백인의 인종 보존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고 과학계가 주장할 정도였다. 일상에서 늘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당연히 삶의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를 시끄럽게 하자 한 식당에서 '아프리카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서슴없이 붙이는 곳이 한국이다. 외국인 영어 강사를 채용하면서 '백인'만 가능하다는 인종차별적인 자격 조건을 포함시키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아이들이 흑인 교사를 무서워한다' 면서 학원 관계자에게 압박을 가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어 강사로서 부적격이라고 판단하는 사회가 과연 상식적인 사회일까? 10 전태일 열사가 몸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고 했던 것은 당시 노동자의 삶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은 애국심으로 버텼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굳게 믿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통제에 익숙해졌다. 경찰이 길거리에서 가위로 사람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자르고 여성의 무릎에 자를 대면서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역사가 숨어 있다. 단순히 무서워서 저항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강력한 규율에 길들여진 대중이 있었기에 독재가 가능했던 것이다.(...) "독재자에게 후한 한국인"이라는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 유산이다. '학생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을 거부했을 때 최대 사형에 처한다'는 놀라 자빠질 만한 조항이 들어 있는 긴급조치가 존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이런 시대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 여기에는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역사의 유산이 깃들어 있다. 박정희 정부가 강조한 것은 이순신 정신만이 아니다. '현모양처'로 대변되는 '신사임당'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강조했다. '현모양처'는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현모양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양처'라는 말은 가끔 등장하는데, 이는 '어진 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양인'이라는 신분 출신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명한 어머니, 그리고 지혜로운 아내'라는 상은 일본의 식민지 가족 정책 이데올로기를 통해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이다. 11 더 이상 112에 불륜을 신고하지 못한다는 건 간통의 이미지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익숙해지면서 가능해졌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지점이 있다. 흡연이든 간통이든 그것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의식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갈등은 이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노인 세대'들은 담배 연기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담배도 마음대로 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개탄한다. 노인 세대의 의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이들이 달라진 사회 이전의 공기에 더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니 나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사회가 내게 어떤 이미지를 강요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12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가 유독 심한 이유는 A가 과격해지도록 유도하는, 혹은 과격함을 방조하는 B,C,D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조항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사무실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동성애자라는이유만으로 누군가 차별을 받는다면, 차별하는 자를 엄히 다스리는 것이 사회의 역할일진대, 많은 어른들이 '문란한 법'이라면서 반대를 한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동성애자 차별 금지법을 만들면 '모두가' 동성애에 전염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대한 반박은 단순하다. 앞서 동성애를 인정한 나라에서 '동성애자가 범람한' 사실은 없다. A가 제대로 된 B,C,D를 만났다면 이런 몰상식한 논리를 펼칠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 미디어 역시 이러한 사회 풍토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마약 파티를 했다고 하자. 언론은 이를 어떻게 보도할까? '동성애자 마약 파티'라고 사실 그대로 적시한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통해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고 차별을 더욱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마약 파티를 했다고 해서 '이성애자 마약 파티'라고 보도하는가? 범죄 뉴스에 '가해자의 성적 지향성'을 늘 언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날마다 '마포구 발바리! 그는 이성애자였다!','이성애자ㅇㅇㅇ, 누구를 성폭행하다!'등의헤드라인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도하지 않는 이유는 이성애자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식으로 알기 때문이다. 13 (...)하지만 청소년 문제를 사회문제 안에서 다루지 않는 나라들도 많다. 청소년 문제가 그 나라에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를 문제로 규정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약물중독에 빠진다면 약물 문제를 다루면서 청소년의 비중을 언급하는 방식을 택하지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을 경계한다. 이유는 간단하지만 진중하다. '청소년 문제'를 표면화하는 경향이 강한 사회일수록 일탈을 저지르는 청소년을 '문제아'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낙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섣불리 '사회문제'라는 범주에 청소년을 가두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처럼 모두가 공부하는 학생이어야만 하는 곳에서는 특정 청소년의 작은 일탈도 '면학 분위기 훼손'이라는 이유로 큰 문제로 인식된다. 그래서 늘 문제아들을 발견하는 데 혈안이니 '청소년 문제'라는 범주가 어색하지 않다. 이런 나라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청소년이 쉽게 원위치로 돌아오지 못한다. '암적인 존재'로 불리는 이들의 방황이 길 수밖에 없다. 14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를 넘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뉴스는 결코 낯설지 않다.일상에서 차별에 둔감한 결과일 터다.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다"는 말이 예능프로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해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의 뜻이 "유럽 백인을 닮았어!"와는 전혀 다른 맥락임에도 별다른 사회를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다. (...)실제로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에는 사회적 약자라는 의미가 배어 있다. 신기하게도 이 측은한 시선의 총량만큼 사회적으로 오해받고 그래서 멸시당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그러니 한국 여성이 미국 남성과 결혼했거나 혹은 한국 남성이 영국 여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한 가정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우리가 만들어 놓은 '다문화'라는 이미지 안에 해당되지 않아서일 게다. 우리가 이미지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성찰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이미지를우리가 고스란히 당연하게 받아들일수록 괴기스러운 일들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15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면서 세계의 주목유 받았다가 논문 조작으로 끝난 희대의 코미디에서 논문 조작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조작이 알려졌음에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줄기세포의 실체를 쫓던 방송사 기자들이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논문이 조작되든 말든 황우석 교수를 끝까지 지지한다는 촛불시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황우석은 '국가 대표' 과학자였다. (...) '한국인의 젓가락 기술'이 난자 추출 기술과 관련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분석이 등장했고 미디어는 보도했다. 황우석을 국가와 동일시한 만큼 그의 추락은 곧 국가의 추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다. 16 토론을 하다가도 "당신의 의견은 북한의 입장과 비슷하다"라면서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논리적으로 토론해서 승산이 없을 때 상대의 주장을 북한과 연결하면 어쨌든 논의는 지지부진해진다.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면, "그럼 사회주의를 하자는 말이야?당신 종북이야?"라고 묻는다. '북한'이라는 단어에필요 이상으로 악랄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대화다.(...) 최근에는 '좌빨'이란단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될 정도다.이는 '좌파+빨갱이' 의 합성어인데, 혐오스러운 두 개의 이미지를 겹쳐 버렸으니 그 효과는 일파만파다.북한의 이미지가 나쁜 것은 '반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다는 말이기도 하다. 17 (...)그 결과 한국에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재벌'이 존재한다. 재벌은 영어로도 'Chaebol'이다.(...)여러 개의 계열사를 동시에 보유하고 친인척들이 이를 운영하고 지배권이 초법적인데다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세습하면서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는 형태는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해도 당연한 것이 아니다.(...)재벌 총수들이 '존경하는 기업인'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늘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경제'라는 마법의 단어가 독특한 '이미지'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특성을 '걸인의 철학'이란 단어로 설명하는 건 전혀 어색하지 않다.(...)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고 해서 '인간다움'이 완성될 리 만무하지만, 실제론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것만 해결되면 다른 것들은 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이 순진한 발상은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은 맹목적으로 경제 성장 패러다임을 고수하다 IMF 위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더' 맹목적이었다. 경제를 단순히 성장의 기조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 신호를 한국은 역시나 '걸인의 철학'의 방식으로 땜질했다. 일단 기업부터 살아야 된다면서 노동자를 파편화시켰다.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당연히 '워킹푸어'라고 불리는 계층이 증가했다. 성실히 일하는 것이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빈곤하지 않음을 보장해주던 시대조차 사라진 셈이다. 18 사람들은 미술관과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권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철저히 '을'의 위치를 고수한다. 그래서 '갑', 즉 미술관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스스로의 주체적 사고를 포기한다. (...) 한국에서 예술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각인된 것이다. '저게 왜 예술일까'라고 질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저것이 바로 예술이니 눈여겨봐라'고만 가르친다. 19 사람들은 소고기의 마블링이 선명할수록 좋은 고기라 생각한다. 그러나 마블링이 좋은 건, 살을 찌우기 위해 억지로 초십동물인 소에게 곡물사료인 옥수수를 먹잇 결과다. 좁은 데 가두어놓고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게 한다. 밀집 사육으로 병에 걸릴 위험이 높으니 항생제 주사를 맞는다. 그래서 소도 아프고, 그런 소를 먹는 사람도 아프다. 그나마 소는 환경이 나은 편이다. 돼지는 '스톨'이란 철제 우리에 갇혀 평생 '뒤돌아보지도 못한 채' 자라고 닭은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그러니 병이라도 나면 전염되는 개체 수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 이럴 경우, 인근의 가축까지 살처분해야 하는데 '죽인 다음 처분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생매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알려져도 사회적으로 별다른 반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 자연, 나아가 동물들을 대하는 이런 지배적 태도의 등장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시 되었을 뿐이다. 20 놀랄 일도 아니지만 한국은 인구대비 성형 수술 횟수가 세계 1위다.(...)그리고 20대 여성의 44%, 30대 여성의 36%가 성형수술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제 '성형'은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한국의 성형 열풍을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개인들이 늘어났다'는 식으로 순진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만약 자기결정권이 증가되었다면 성형수술도 다양한 개성을 드러내는 형태여야 한다. 과연 그런가? 21 아파트 경비에게 음식을 집어 던지면서 먹으라고 하는 사람. . ., 이런 얘기를 들을 때 씁쓸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저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저럴 리 없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어쩌다가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라는 확장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봉쇄한다. 또한 나는 저런 이상한 사람과는 달리 정상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나 그 이상한 사람들과 나는 같은 사회적 공기를 마시고 있다. 나 역시 대기업을 찬양하고 최저임금이 올라 아파트 경비원의 인건비가 오를 때마다 '인원 감축'에 찬성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면 우리가 내는 관리비로 우리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는 이들은 달나라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나 자신의 일상을 반성해야 한다. 나도 언제든 그들처럼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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