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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다큐 <모래>로 데뷔해 단편 극영화 <진주 머리방>을 만든 강유가람 감독은 2017년에 공개된 박근혜 퇴진행동 옴니버스 <광장>에서 처음으로 2016-2017년 거리로 나온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지금 영화제에서 돌고 있는 <시국페미>는 마치 함께 <광장>에 실렸던 박문칠 감독의 단편이 장편 <파란나비효과>가 되었듯, 40분으로 재편집이 된 버젼이에요. <모래>가 자신과 부모가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바라보는 사적 다큐였고, <진주 머리방>이 두 여성 사이의 관계를 통해 연대를 묻고 <이태원>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랫동안 미군을 상대로 한 유흥업소의 여성과 새롭게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대비하며 관계성을 모색했듯, <시국페미> 역시 ‘관계’를 고민합니다. 다만 이전까지의 강유가람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이들이 있는 ‘공간’을 함께 바라봤다면, <시국페미>는 연속되어 편집된 일군의 인터뷰 시퀀스가 중심입니다. 그 인터뷰 대상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같이 꽤 오랫동안 활동한 단체도 있지만, ‘페미당당’이나 ‘강남역 10번 출구’ 같은 ‘영페미니스트’들이 주를 이룹니다. 인터뷰의 초점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왜 다양한 페미니스트가 나왔는지에 맞춰져 있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배경에서, 각자의 사유를 가지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단체를 만들어 거리로 나왔습니다. 작품은 겹겹이 쌓인 인터뷰 장면들에서 하나의 시대상을 훑어내요. 박근혜와 최순실은 분명 문제적인 인물이지만, 그들을 쉽게 욕하는 과정에서 여성 혐오가 동시에 이뤼지는 문제입니다. 저마다 거리에 나온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새로운 시대는 그저 박근혜의 퇴진으로 열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국페미>는 2017년 대선 이전에 촬영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바람’이 나와요. 페미니스트이자,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사람이 당선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2018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시기지만, 차별금지법은 쉽게 제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퇴진 시위에 나온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도 조금씩 잊혀지는 듯 해요. 무척이나 짧은 프로젝트 영상이지만, 불과 일 년 사이에 많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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