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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작이란 본래 세 편의 영화가 모여 하나의 공통된 주제 혹은 완결된 이야기를 결성해야 한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은 제국군과 반란군의 대립이라는 간단명료한 소재를 가지고 스페이스 오페라 서사시의 기승전결을 확실하게 선사했고, 이후 공개된 프리퀄 삼부작은 퀄리티는 조악하지만 역시 "다스 베이더의 탄생기"라는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두고 나아간 시리즈이다. 이 두 시리즈는 모두 1에서 시작해서 2를 거쳐 3으로 마무리되는, 삼부작으로써의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퀄 시리즈를 "삼부작"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보면 존재감이 심각하게 무력해진다. 이 삼부작은 하나의 뚜렷한 목표가 없고 세 작품을 하나로 합치는 결합력 또한 부실하다. 마치 영화를 만드는 이들조차 이야기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고, 7, 8, 9편 모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 채 어정쩡하게 시리즈를 끝낸 듯한 느낌이 강하다. _ 이 삼부작의 시작을 알린 에피소드 7인 <깨어난 포스>부터 들여다보자. J.J 에이브람스의 <깨어난 포스>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듯 <새로운 희망>의 21세기 재편집본이다. 거의 똑같을 정도의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을 첫 <스타워즈> 영화로부터 그대로 가져와 에이브람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계승한 사례인데,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는 매우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사실상 바로 이전 이야기인 <제다이의 귀환>으로부터 시간이 30년 이상 지났기에, 그 뒷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신화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과거의 그 세계관을 현재로 갖고 와서 관객에게 다시금 상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깨어난 포스>는 모범적이면서도 안전한, 시리즈의 속편보다는 “리부트”에 가깝다. 익숙한 세계관과 설정들을 발동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도 새롭게 이야기를 이끌어 갈 캐릭터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한다는 면에서 모범적이고 <새로운 희망>의 스토리라인이 지니고 있는 틀을 강력히 고수하기에 매우 안전한 작품이다. 하지만 기존의 팬들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설정과 장면들을 결국엔 그대로 다시 보게 되는 것과 같기에 도전적인 면에서 빈약한 부분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실하고 깔끔한 어드벤쳐 이야기를 선사한 이후 이야기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히 열어두고 마무리를 했기에 삼부작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_ 이후 그의 뒤를 이은 라이언 존슨의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는 여러모로 디즈니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역사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이다. 라이언 존슨은 영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할 때 수없이도 밝혔듯, 본인은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작품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수도 없는 리부트와 리메이크로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디즈니 업계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한 감독에게 이 정도의 주도권을 건네주었다는 사실부터 유일무이하다. 그리고 실제로 <라스트 제다이>는 <깨어난 포스>와 정반대되면서도 이전의 어떠한 <스타워즈>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토리텔링을 자신감 있게 펼친다. “스타워즈”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그러한 요소들이 있고 라이언 존슨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기대감을 배신하고 신화는 이전과는 다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한다. 단순히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펼쳤다는 이유 만으로 영화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 아니다. 라이언 존슨은 <스타워즈>가 과거에 묶여 있지 않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듯했으며,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전설적인 존재로 평가받던 루크를 상처받은 인간으로 표현함으로써 그의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기원으로부터 얽매여 있던 레이의 특별한 과거를 부정함으로써 그녀가 스스로 일어나게끔 하는 설정 등은 기존의 기대감과 반하면서도 오히려 극의 캐릭터들을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깨어난 포스>와 정반대에 위치한 영화라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전편을 배반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J.J 에이브람스가 <깨어난 포스>를 통해 이야기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듯, 라이언 존슨은 뒤를 이어받아 그 가능성을 본인의 방식대로 탐구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펼쳤다. 물론 시리즈로써 분위기가 상반되는 두 작품의 연결을 완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수용 가능성이 있다. _ 그렇다면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어떠한 영화인가? 바로 이전 작품 <라스트 제다이>가 이제는 과거를 묻어두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했기에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속편으로써 그 신화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로 인해 일어난 팬들의 분열과 논란으로 인해 디즈니는 낙심한 것일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라스트 제다이>에서 팬들이 실망감을 보였던 부분들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고, <깨어난 포스>보다 한발 더 나아가 대놓고 각종 노스탤지어 요소들을 끌고 와서 팬심에 호소하기 바쁘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심각한 문제는 <라스트 제다이>의 바로 다음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거의 모른 채 하는 태도이다. 기껏 부정한 레이의 과거를 다시 되살려내 뜬금없이 등장한 팰퍼틴과 그녀를 연결하고, 선과 악 사이의 기나긴 갈등 속에서 끝내 스스로 악의 절대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카일로 렌은 팰퍼틴의 재림으로 인해 존재감이 무력해지며, 루크는 본인이 언제 자신이 갈등을 겪었다는 듯 평온함 그 자체인 제다이 마스터가 되어있다. 전편을 무시하고 도입한 설정들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면 차라리 모르겠으나, 새로운 방향을 포기하고 여전히 스카이워커, 제다이, 시스, 혈통주의 등을 고집하며 익숙한 기존의 관습에 구속되고자 하는 결정이 참으로 애석하다. _ J.J 에이브람스가 스스로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라이언 존슨의 방식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 작품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의 기준을 세워놓았다면 그것을 이어가야 마땅한데,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와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설정들을 모두 재정비하는 동시에 또 그만의 이야기를 펼치자니 영화가 산만하기 그지없다. <라스트 제다이>가 <깨어난 포스>와 완전히 다르니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역시 <라스트 제다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르다고 하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깨어난 포스>는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시작을 선포하고 그 진행 과정은 다음 작품에 바통을 넘긴 작품이고, <라스트 제다이>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진행을 선보인 영화이다. 두 편의 작품으로 인해 이야기의 방향과 기준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인데,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그의 뒤를 이어받기 보다는 새롭게 이야기를 정리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바쁘다. 이러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첫번째나 두번째 작품도 아니고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최종편이기에 더욱 황당한 것이다. 심지어 영화는 사실상 <제다이의 귀환>이 지닌 이야기의 틀을 다시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시리즈의 도전정신을 죽여버리지 않았는가. (그놈의 데스 스타 설정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_ 삼부작을 다 보고 나서 확실히 생각이 드는 사실은 바로 J.J 에이브람스와 라이언 존슨은 서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레이의 부모님이 누구인지, 루크를 신격화해야 하는지, 레이와 핀, 그리고 포의 우정관계가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두 감독 사이에서 상반된다. 이는 이 영화들이 따로 존재하는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서로의 뒤를 잇는 시리즈이기에 더욱 큰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나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고 본인의 비전만 펼치기에 바쁘다 보면 시리즈의 “일관성”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결국 시퀄 삼부작은 특정한 목표도 없고, 7로 시작해 9로 끝나야만 하는 당위성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작품 모음집’에 그치고야 말았다. 두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삼부작을 기획하기 이전에 어떻게 시작해서 끝을 맺을지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했을 텐데, 두 감독 모두 본인의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기에 급급하다 보니 서로 합의가 안된 채 이야기가 난잡해진 것이다. 차라리 한 감독에게만 삼부작 전체를 기획하도록 맡기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굳이 누구 한 명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무의미해 보인다. 결국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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