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으로 망명길에 오른 세상 물정 모르는 유럽 국가 어느 왕의 해프닝 코미디처럼 시작한 영화는 이내 50년대 중반 미국의 모든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로 극대화된 미국의 문화는 젊은이들의 파격적인 자유분방한 모습과 모든 것들이 광고화되고 자본화되는 상황 속 부적응기로 아이러니하게 풍자되고, 채플린 본인 스스로 미국에서 추방당하게 된 매카시즘의 광풍은 원자력이라는 공포의 소재를 바탕으로 하여 한 소년의 주장과 사연 그리고 그로 인해 위원회에까지 소환되는 일련의 해프닝으로 직접적으로 비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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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는 괴리가 있으나 인간적인 선의로 가득 차 있는 채플린의 캐릭터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로 인해 미국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와 냉전 시대의 민주주의의 허실은 그 속에 품어져있는 비상식과 비인간적인 모습이 도드라져 대비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전작인 <라임라이트>가 채플린이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실제 삶을 영화 속으로 가져와 재현할 때의 압도되는 예술적 감동을 준 것과는 달리 <뉴욕의 왕>은 미국에서 추방되어버린 스스로의 삶을 영화 속으로 가져왔으나 수준급의 풍자극 이상의 감동은 주지 못하는 듯 하여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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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것은 한 예술가의 삶이 은유적으로 영화 속에 담겨졌을 때 조응하는 깊고도 넓은 여백의 사유가 주는 영화적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의 왕>은 채플린이라는 예술가의 정치적인 삶이 너무도 직유적으로 품어져있다. 어쩌면 이것은 채플린이라는 이름의 광채가 너무 크고 밝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