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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100미터 달리기가 제일 빨랐던 시절 트란 안 훙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감독의 [그린 파파야의 향기]란 영화가 난 그리도 싫었다. 상은 왜 그렇게나 많이 탄 것이며, 영화좀 본다는 어른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침이 마르고 닳도록 이 영화를 칭찬해댔다. 그 진빠지게하는 느리고 느린 아니 어쩌면 멈춰 버린 듯한 시간과 공간을 나는 전혀 이해할 맘이 없었다. . 내 생애 100미터 달리기가 제일 느려진 지금 (앞으로도 매일 조금씩 더 느려질테지만) 30여년이 지난 시간동안 베트남 어느 마을의 시간은 훌쩍 빨라진듯 보였다. 제대로 말도 못하던 수줍은 10살 시골소녀 므이(트란 누 엔케)는 어느새 훌쩍 커 부잣집 대감의 첫번째 부인이 되어있었다. 그 느린 시간속에서 용케 살아남아 시집가고, 자식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니 헤어진 친정오빠처럼 무척이나 반가웠다. 또한 파리 새끼 하나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무탈한 동네에서, 힘빠진 노인부터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꼬마아이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있는 힘껏 느린 시간의 굴레를 어떻게든 밀고 나가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이유였다. 그렇게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그린파파야의 향기만 그윽히 남아있는 동네에 드디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것이 그토록 100미터 달리기를 빨리 뛰길 소원했던, 이 때문에 파파야 향기조차 제대로 맡을수 없었던 소년이 더 이상 빨리 뛸수 없음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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