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_
7 years ago

타자의 추방
Avg 3.9
“안정된 자존감을 갖기 위해 나는 내가 타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며, 타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표상을 필요로 한다. 이런 표상은 불분명할지라도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름 아닌 존재감의 결여가 자기 상해의 원인이다. 생채기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오늘날의 성과 사회, 최적화사회의 전형적인 자기처벌의 의식일 뿐만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비명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만지는 타자에 의해서 비로소 존재하지만, 우리는 타자가 추방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한병철의 탁월한 통찰. 『에로스의 종말』과 연이어 생각하면, 그리고 그의 저서에 나오는 논의를 종합해보면 형언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는 아토포스적 타자와 그를 향한 사랑과 목소리(에로스)만이 우리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타자와 공생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타자’를 전제하기에, 관계의 상실과 끊임 없는 타자의 재발견이라는 숙명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뿐인 타자를 잃고도 우리가 훼손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런 우리가 모여 이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훼손 뿐이기에, 재생산의 요령을 알 수 없었기에 지금-여기가 이 모양이 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