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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따로 분류해야지. <기생충>을 흑백으로 봐야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아래에. - (첨언: 아래 글은 2020년도 4월 흑백판 극장 개봉 당시 관람 후 남긴 글이다. 채도에 관한 내용은 당시 판본 기준이고,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블루레이 수록 판본은 채도가 없는 흑백이었다. 아래 글은 극장 판본을 기반으로 쓴 후기이며, 곧 왓챠에서 공개된다는 판본은 어떨지 궁금하다) <기생충: 흑백판> 영화 내에서 ‘흑백’이라는 요소에 오롯이 집중해보려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전의 일반판 관람까지 모두 포함하더라도 이번 흑백판에서 느낀 감정이 가장 격렬하고 짙었다는 것이다. 보다가 뜬금없이 떠오른 영화는 <문라이트>였다. 이번 흑백판은 완전히 채도가 제거된 흑백이 아닌, 묘하게 청록빛을 띄고 있는 흑백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빛깔이 푸르다고 느낀 순간 <문라이트>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달빛 아래서 푸르다". 이 순간부터 나는 지워진 색채와 계급을 연결지으며 보게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는 장면에선 연세대학교 로고의 푸른빛이 거세된 상태였다. 색은 그 자체로 계급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흑백이란 형태는 우리가 시각적으로 느끼는 계급의 일부를 지우며 영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감각하던 것들 중 일부가 사라지면, 우리는 남은 것들에 더 깊게 몰입하게 된다. - 색채가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은 카메라에 담긴 물체와 인물의 질감,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다. 색체가 주는 계급이 사라진 대신에 등장 인물들의 대사, 행동의 계급은 더 선명해진다(대사 속 계급의 예를 든다면 다애가 기우에게 다송이의 ‘천재인 척’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다애가 ‘영감 떠오른 것처럼’이라 말하며 추상의 개념을 끌어온다면, 기우가 응답할 때엔 ‘구름을 10분 동안 보는 것처럼’이라 말하며 현실의 층위에만 머무른다. 사고하는 언어 속에도 계급은 스며들어있다). 또한 (춤을 추는 사람과 춤 자체를 구분하듯이) 인물의 '표정이 담긴 얼굴'이 아니라, '표정'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흑백은 유형의 언어 대신, 형태 없는 언어로 영화를 풀어낸다. 영화의 절정을 장식한 요소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냄새'였음을 떠올린다면, 무형의 언어로 접근하는 흑백은 <기생충>의 핵심에 더 근접한 포맷이 아닐까. 서사가 영화에서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컬러든 흑백이든 같은 이야기니 차이가 없지 않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나는 영화가 이미지의 예술이라 생각한다. 같은 이야기더라도 그걸 제시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면 결국 이는 다른 영화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 흑백판>의 관람이 조금이라도 고민된다면, 한 번은 꼭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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