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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부정당하거나 조롱당하는 일을 겪은 후, 당신은 바사니가 될까 바사니의 아버지가 될까 아니면 파다가티가 될까. . . 나는 아무래도 비관적인 바사니가 될 것 같다. 국가가 자신을 다시 받아준다는 것에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게 괜찮아지면 그 자신의 삶도 단순해지고 행복해지겠지만... 그건 불공평하지 않나. 그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도 은근하게 느껴지는 부정과 조롱, 멸시와 미움을 견뎌내야 했는데. 그 끝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니. 거기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마치 학대하는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불쌍한 애완견이 된 기분이다. 아니다. 대상이 분명하면 오히려 억울함도 덜할 텐데 여기선 가해자도 명확하지가 않다. 피해자는 분명 있는데 가해자들은 그저 ‘군중’이라는 이름에 섞여 희석된 결말이라니. 더 최악인 거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것들에 시니컬해지는 것, 무로 돌아간 결말에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단순한 사람들(바사니의 아버지와 같은)에게 분노가 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바사니 글의 원천은 아마 그러한 감정들일 테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감정들을 전달하기 위해선, 소설가 본인이 그런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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