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Ryan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Avg 3.0
2003년 3월 <황무지에서 사랑하다>로 출간되었다가, 1년 뒤 제목을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하는 사랑>로 바꿔 재출판. 2023년 1월 현재 둘 다 절판. 1달 전쯤 동네 헌책방에서 1천원에 팔던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천 원을 지불하기에도 책 상태가 너무 안좋다, 싶어서 넘겼던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회사에서 모두 타이핑해냈다. 헌책방 앞에 서서 대충 봤을 때는 나쁘지 않아보였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별로다. 타이핑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빛나는 단상들이 있다. 사람은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다. 이건 굉장히 힘든 일이죠. 자기 멋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공포...... 꼭 내 멋대로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것이 내 멋대로인지 생각 안 하면 안 되나, 나 스스로 모든 것을 일일이 정하지 않으면 안 되나? 이런 공포를 깨달으면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연애가 그렇죠. 연애를 한다는 것은 황무지에 서는 것과 똑같은 것이에요. 연애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어떤 책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40p 사랑은 자유로운 어른의 존재 양태이다. 물론 그 안에 연애가 담겨 있을테고. 오직, 책임질 수 있는 어른만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둘 만의 자유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사랑사랑사랑, 사랑노래를 불러대면서 이 점은 쉬이 간과되는 듯 하다. 연애는 특별해요! 내 생각에 연애의 적은 ‘정론(正論)’. ‘정론’ 따위 엉터리! 올바른 것은 답답해요. 그야 당연히 답답하지 않은 편이 좋지요. 그러니까 연애에 빠지고 나는 올바르지 않은 편이 좋아요. 나는 상대를 속박하고 지배하고 의존하고 또 상대는 나를 속박하고 지배하고 의존하고 그런 것이 좋아요.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203p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온 세계의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와 마음을 하나로 하는 행위에 앞서 고작 0.03밀리미터의 벽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로 이어질 수 없다는 고뇌를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143~144p 그런데 읽다보니...좀 이상하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마음 아리던 독자로서 고백컨대, 사실 냉열에서 로쏘보다는 블루를 더 좋아했었다. 허나 이제 그 평가를 수정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머리속에 물음표를 가득 띄워주더니, 이내 쐐기를 박는다. 에이즈가 만연하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사랑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쯤 되니, 사람에 대한 호오를 떠나 이 사람 좀 아픈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 이런 결정적인 킬링 파트 뿐 아니라 소소하게 들리는 목소리 대부분이 아주 가관이다. 어릴 때 애정했던 작가니까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사실 잊고 싶다..). 그에 반해 에쿠니 가오리는 역시나 아주 내 스타일. 특히, 동사에 대한 에쿠니의 말들은 새겨볼 만하다. 우리가 쓰는 많은 동사들, 가령 '상처입다' 같은 것들은 사실 자동사일 때만 가능하다는, 상처를 입는 것은 상처를 입는 쪽의 능력이니, '내가 이렇게 상처를 입었는데'라면서 상대를 추궁할 수 없다는 생각은 빛나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난 이 세상에 영원이 있다고, 절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 순간 속에 있고, 하지만 그 한 순간 속에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영원이 존재해요. ‘당신을 내내 사랑할 거야’,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서로가 말했을 때 그 절대와 내내는 바로 영원입니다. 나는 그런 영원을 바래요. 그때, 그 영원을 안다는 것, 그 영원 속에 자기가 있음을 동경하니까, 그 순간에 죽을 수 있다면 좋겠죠. 죽을 때 그런 식으로 말해 주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없어도, 사랑에서 멀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요. 그 영원을 지나 왔다는 것은 이미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으니까요.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죽고 싶어요. <황무지에서 사랑하다>,250~251p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했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의미로 사랑은 영원한 것 같아 설현담, "영원한 사랑#1",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잃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잃을 수 없다. '잃다’는 자동사이므로, '내'가 잃으려하지 않는 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파트너가 이별을 고하거나, 심지어 한창 열애 중이어도 잃을 수 없는 것이다. 순간의 완성, 순간의 영원, 사랑은 그런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랑이란, 그 전까지의 나를, 내가 쌓아온 내 세계를 다 허물어뜨리고 황무지에서, 처음부터 새로 쌓아가는 모래성일게다. 바람에 흩날려 금방 무너지겠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 만들던 그 모래성은 그 자체로 영원하다. 아니, 쉽게 무너지고 부서지기에 영원하다.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는 성에 천착한다면 우린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없을 거거든 ㅡ +)뱀발 1: 김난주-양억관이 부부였구나.... 이제야 알았네. +)뱀발 2: 츠지 히토나리가 그렇게 이혼했다며 징징징징 대던 그 파트너가 러브레터의 히로인, '나카야마 미호'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