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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세상에 짓눌린 채 아이들을 키운다. 도미노처럼 함께 짓눌리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엄마를, 낮잠을, 옆 집 삼촌의 손재주를, 노래를, 선글래스를, 스스로 터득한 지혜를. 그 사랑에 순식간에 질려 차갑게 상처 주는 부모가 어찌 암무 뿐이랴. 어른들의 논리를 몰라서 혼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게 어찌 라헬과 에스타 뿐이랴. . 살다보면 아무도 모르게, 어쩌면 나도 모르게, 운명에 상처받는 일들이 생긴다. 라헬과 에스타에게 그런 상처를 선사하는 작가가 미웠고, 그래놓고는 그들의 버거운 시간을 면밀하게 살피는 그의 문장들에 울컥했다. 운명이 우리에게 해주지 못한 걸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걸까? 한 명 한 명의 삶이 어떻게 조금씩 무너졌는지 차근차근 짚어간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고, 각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건지, 의도치 않은 폭력은 어떻게 의도치 않음을 뚫고 발사되는 건지. . 암무가 그날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에스타가 성추행을 당하지 않아서 언제든 몸을 숨길 보금자리 같은 게 없었더라면? 벨루타가 아이들을 위해 배를 고쳐주지 않았더라면? 차코가 더 나은 어른이었더라면? 베이비 코참마가 계급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소피몰이 죽지 않았을까? 벨루타가 죽지 않았을까? 암무는 벨루타와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었을까? . 벨루타가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배를 고쳐준 일, 소피몰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아예메넴으로 온 일 같은 건 탓할 수 없다. 하지만 에스타가 성추행을 당한 일, 암무가 남편에게 얻어맞아서 이혼을 한 일, 여자라서 벌 수 있는 돈이 한정되었던 일, 차코가 남성우월주의적인 가정에서 키워져 무능하고 오만한 어른이 된 일은 없어도 되었을 일들이다. 굳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일들이 모여 거대한 비극이 된다. 작은 존재들을 막대하는 구조였으니까, 존재들에게 차별적인 구조였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된 구조의 어느 작은 구석에서 슬퍼하고 있을 라헬과 에스타의 수만큼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 비극의 책임소재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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