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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영당시에는 띄엄띄엄 커플이야기만 봤었는데 최근에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구조적인 완결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성혐오도도. 이야기는 처음부터 세경이가 주인공이자 재투성이 소녀, 신데렐라임을 분명히 하며 시작한다. 2. 지세커플과 지정 커플 모두 중심에는 계급문제가 있고 지세와 지정 모두 지훈이 계급적인 우위에 서는데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음과 세경 사이에도 계급이 나뉜다. 세경의 외모에 대한 묘사를 듣고난 후 정음이 지훈이 여자친구가 세경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에피는 정음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는 편견의 벽을 보여준다. 이러한 계급문제는 극중에서 해리와 신애에게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초반 해리가 신애에게 보여주는 직설적인 언어는 둘의 계급문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사실상 이런 해리의 모습은 해리로 상징되는 부유층의 모습을 여과기없이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3. 이 이야기 속에서 목도리는 인물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지정커플이 사귀게 된 시작도 목도리를 함께 두르다가 어이없게도 키스를 해서인 것(둘이 연인이 되는 에피에서 세경이는 처음으로 신애와 싸우고 앓아눕는다.) 처럼 줄리엔은 우연히 마주친 세경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선물하고, 세경은 지훈에게 목도리를 직접 떠서 선물한다. 지훈과 준혁 역시 세경에게 목도리를 선물한다. 세경이 역시 준혁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기 위해서 목도리를 떠준다. 4. 관계의 변주는 지정, 지세, 준정, 준세 이 사각관계가 끊임없이 다양화되며 변화하는데 재밌는건 세경-지훈-정음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는 세경과 지훈의 이야기가 정음과 지훈의 이야기로 중간에 변화하여 마무리는 세경과 지훈으로 마무리 되거나 정음과 사귀는 도중에도 이 둘은 끊임없이 관계를 진전시키고 변화한다. 그러니까 이 극은 처음부터 세경이가 중심이었듯이 커플링 역시 지훈과 세경이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여기에서 준혁이는 끼어들지 못한다. 지훈이 세경이를 계속해서 신경쓰며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동정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계급 때문이듯이 세경이 지훈이를 사랑한 것 역시 같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즉, 지훈이는 사회적 위치로 '왕자'이고 준혁이는 정음에게도 세경에게도 '왕자'는 되지 못하기에 이 관계에서 끼어들지 못한다. 따라서 이 사각관계는 질투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준혁과 지훈이 대립하는 대신 세경과 정음이 대립하는 것으로 변주된다. 러브라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이 둘은 친밀함을 쌓으면서도 극중에서 의도적으로 대립되는데 지금 방영했으면 꽤나 비판받았을 누가 더 예쁜가에 대한 난상토론이 펼쳐지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해서 정음이 세경에게 돈을 빌리는 에피, 그리고 지정이 커플이 되고난 후에도 둘이 게임을 벌이는 것도 그렇다. 복싱게임을 하게 되는 계기였던 목도리 사건은 이 셋의 관계를 비유한 것이다. 지훈이 세경이에게 선물한 목도리를 정음이 잠깐 밖에 하고 나갔다가 실밥이 살짝 튿어지면서 시작된다. 이것은 처음부터 세경이의 것이었던 지훈을 정음이가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세커플이 결국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것처럼 정음이에 의해 튿어진 실밥은 세경이가 고쳐보려 노력하지만 고칠 수 없다. 5. 이 외에도 이 둘에 대한 복선은 많지만 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세경이가 왜 죽으면서까지 사랑을 이루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불행포르노라며 여성을 착취한 사례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가 불행포르노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결말이 세경을 위한 결말이라고 낭만적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로맨스를 강요당하는 여성들에게나 세경이에게나 어이없고도 가혹한 엔딩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엔딩이 신세경을 위한 엔딩이라며 세경이를 그만 욕하라는 의미이자 첫사랑을 이루어준 것이라고 인터뷰한 걸 봤다. 어떤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조금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저 첫사랑 못 이룬 귀신이 붙었다는 것 말고는. 도대체, 그는 여성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일까? 6. 세경이는 성숙해보이지만 세상물정 모른다. 그는 밤낮없이 일하고 밤새 사골을 끓이며 가족들의 작은 잔심부름까지 도맡고 해리의 포악함과 정보석의 신경증을 받아낸다. 그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는 준혁학생도 포함된다. 자신의 감정 숨기랴 가족들 눈치보랴 준혁이 눈치보랴, 그에게 있어서 감정적 탈출구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가 받는 월급은 고작 60만원(그것도 50만원이었는데 10만원 올려줌). 고된 삶을 연명하는 그에게 어느날 우연히 다른 집으로 갈 수 있는 기회와 기존 월급에서 3배 이상인 200만원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리는 신애를 포악하게 괴롭히고 여전히 정보석은 신세경을 못살게 굴고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거절한다. 물론 그 집이 알고 보니 더 큰 지옥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0만원이라는 돈은 그에게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그가 자신에게 온 기회는 단 하나, 지훈이의 세경을 향한 '믿는 구석'이라는 말 때문에 놓치고 마는데 그러니까 결국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여자는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어리석은 남자는 여자의 인생을 망친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동시에 세경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극중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한 결정이자 유일한 이기적인 결정이다. 자신을 위해 결정한 몇 안 되는 결정이 그를 다시 불행속으로 빠뜨린다. 하이킥 에피소드 중에서 이 에피소드를 가장 싫어한다. 7. 하이킥에서 흥미로운 건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결국 하이킥이 계급의 문제를 다루고 세경은 신데렐라조차 될 수 없는 계급이었고, 지훈 역시 그렇기에 자신이 누구를 진짜로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결말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해리와 신애에 대한 반응의 변화야 말로 이 시트콤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해리를 욕했던 사람들은 점차 해리를 이해하는 반면에 신애를 욕하는데 재밌는 건 사람들이 신애를 욕하는 이유가 초반에 신애를 구박하던 해리의 말과 똑같다는 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해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까. 둘 다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데 어째서 해리와 신애에게 동일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8.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현경의 집에서 나와 새로운 출발하려는 이유를 세경은 신애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처럼 ‘쪼그라들어서’ 라고 말한다. 신애도 가엽지만 그 어린 나이에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신경쓰지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해가려는 세경이가 너무 가여웠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불행에 빠진 채 끝나지면 가장 큰 비극은 역시 세경이다. 나는 이 극이 멀리서 보면 희극인지도 모르겠다. 9. 나는 정음이 지훈이와 잘되길 바랐는데 그건 황정음 배우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커서 별로 신경쓰지 않은 연출에도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풍부한 감수성과 예민한 감수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배우가 있다면 그건 황정음 배우같다. 예민하다기 보다는 풍부하다는 말이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 배우이야기를 좀 더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배우들이 자기 몫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베스트는웃지 않으며서 코미디 연기를 수행한 정보석 배우와 진지희 배우라고 생각한다. 정보석 배우가 라디오에 나와 진지희 배우에 대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린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배우라며 베스트로 꼽았었다. 백프로 동의한다. 실제 성격은 정반대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당차게 연기하는지. 이 연기 하나로 오래오래 보고 싶은 배우가 되었다. 10. 거슬리는 에피를 말하면 한도 끝도 없고 여성혐오도 너무 심하다. 왜 굳이 신세경과 황정음 사이를 한 번 더 계급으로 갈랐는가부터 시작해서 둘을 그려내는 방식까지 전부 엘리트주의적이고 여성혐오적. 김병욱 개싫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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