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주의 시공간을 따라 살피는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의 역사와 현재
인간은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다
“자유롭기 위해서요”
1830년 미국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인디언 이주법에 서명한 후 수만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850년까지 20년 동안 강제 이주를 당했다. 1831년 멤피스와 테네시에서 촉토족 이주 모습을 지켜본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당시의 음울한 풍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폐허와 파괴의 분위기,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이별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음이 짓눌리는 슬픔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인디언들은 조용했지만 침울했고 말이 없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사람에게 ‘촉토족은 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납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자유롭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 다른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가장 축복받고 가장 오래된 아메리카 사람들의 추방을 지켜보았다.”
지중해 바닷물에 찬 기운이 감돌던 2015년 9월 2일 아침,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 세 살배기 어린이가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파도에 떠밀려왔다. 인형처럼 작은 남자 아이는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가족과 함께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고 고무보트에 탔던 시리아 난민 가족의 아들로 밝혀졌다. 겨우 다섯 살인 형 갈리프와 엄마 레한도 보트가 뒤집히면서 다른 난민들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이례적으로 1면에 사설을 싣고, 자국 정부에 ‘난민 수용 분담’을 촉구하는 시민청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신문은 “해변에 휩쓸려온 시리아 어린이 주검의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진에도 난민들에 대한 유럽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유럽의 소극적인 난민 정책을 질타했다. 이후 유럽의 난민 정책은 확연한 변곡점을 찍고 인도주의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주’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기록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이주는 인류의 삶과 문화 그 자체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떠났던 길,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길, 그 길에는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고, 연대와 적대가 뒤섞여 있다.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지금 같은 삶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가진 것의 대부분을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나설 것인지, 절박한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한 이들이다. 그러한 선택에서 누군가는 갈망하던 새 삶을 열고,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을 하거나 안타깝게 죽어간다.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는 이 같은 ‘이주’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기록이다. 언론사 국제부 기자로 ‘아랍의 봄’ 민주화 열기와 파리 동시다발테러 현장을 목격하면서 이주와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 조일준은 이 책에서 ‘이주’라는 열쇳말을 나침반 삼아 인간 삶의 궤적과 현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제1부 〈인류의 이주, 그 변천과 흥망의 기록〉에서는 인류의 이주 역사를 간추려 조망한다. 실제로 인간의 집단적 이주를 촉발했거나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건을 중심으로 살핀다. 제2부 〈국제 이주, 여전한 문제들〉에서는 현대 국제 이주의 흐름과 주요 현안들을 고찰한다. 특히 난민 문제에 주목한다. 국제 이주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이론과 논점, 이주와 관련된 통계 수치들, 이주를 둘러싼 개별 국가의 정책과 국제사회의 대응 노력도 간략히 소개한다.
우리 모두는 이주자의 후손
아프리카를 탈출하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지구의 여러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아주 먼 옛날,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 중부의 사바나 지대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는 충분히 넓은 대륙이었지만, 인류의 조상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더 풍족한 먹을거리와 더 나은 생존환경을 찾으려 했고, 위험을 피하려 했다. 때론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에 이끌렸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인간이었다. 150만~200만 년 전의 일이었다. 이어 35만 년 전경에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를 잇는 고리인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해 아프리카와 유럽, 중앙아시아에서 번성했다. 20만 년 전 무렵에는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으며, 약 7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만 년에 걸쳐 북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남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까지 영역을 넓혔다.
오대양 육대주가 인간의 영토로
유라시아 대륙을 완전히 정복한 인류는 약 2만3000년 전에는 베링 육교를 거쳐 알래스카와 북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로마, 이슬람, 몽골 등 여러 제국이 등장하면서 확산과 충돌을 거듭했다. 신대륙에서는 원주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신대륙으로 강제 이주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국가 등장 이후에는 민족 혹은 국민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국가 간 경계가 구획되면서 오랜 세월 이웃으로 지내온 집단이 갑자기 공포의 살육자로 돌변하는 대량학살과 통제의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시나브로 오대양 육대주가 인간의 영토가 됐다. 최소 100만 년에 이르는 장구한 여정이었다. 오늘날 지구에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이미 반세기 전에 미국은 달나라에 인류의 발자국을 새겼고, 2030년대에는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 우주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주는 오늘날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
이주 현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절실하다
지금 우리는 문자 그대로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국가 간 이동과 여행의 빈도가 높고 규모도 크다. 어떤 이유에서든 외국을 여행할 기회가 많아졌다. 교통수단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대량 이주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이주가 자유로운지는 의문이다. 자유로운 이주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이주 장벽을 갈수록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법과 제도적 장치들, 국제 안보 위협, 정보 비대칭, 빈부의 극단적 양극화가 ‘보이지 않는 손’의 일부다. 오늘날 197개에 이르는 나라들의 국경을 넘는 상품의 종류와 수량을, 마찬가지로 똑같은 국경을 넘는 인간 이주의 규모와 성격보다 더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이주 문제는 이미 국민국가 혹은 영토국가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인간이 곤궁한 삶과 목숨의 위협을 피해 자원과 기회가 많고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무작정 법규와 물리력으로 막는 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강압적 저지에는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주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통찰력을 갖춘 시각, 이주로 말미암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절실한 이유다.
세계 인구의 3.3퍼센트가 이주민
국제이주기구IOM의 정의에 따르면 ‘이주’는 “국경을 넘었거나 혹은 특정 국가 내에서 사람이나 집단이 이동하는 것으로, 그 기간과 구성, 원인에 상관없이 어떤 형태의 인구 이동이든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 ‘이주자’는 이주의 이유와 방법에 상관없이 “외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을 말한다. 국제이주기구가 집계한 2015년 기준 전 세계의 이주자는 2억4400만 명에 이른다. 세계 인구의 3.3퍼센트가 이주민이다.
2015년은 유엔이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세계 강제 이주민 수가 6000만 명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분쟁과 박해에 따른 난민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2016년 6월에 발표한 《강제 이주민 글로벌 동향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세계 강제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