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문선희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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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생으로 사진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문선희. 광주 출신으로 무등산 자락에서 자란 그녀는 1980년에 18개월 된 아기였고, 홍역에 걸려 있었음에도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 속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스스로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이던 언니와 오빠들의 기억이 불러일으킨 사실이었다. 바로 이 부분을 힌트로 문선희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되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의거한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문선희 작가는 2년에 걸쳐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들 중 80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직접 겪은 그 일에 대한 증언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꽤 되었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오래 쳐다봐주고 오래 만져주는 만큼 벽들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광주의 시인 임동확은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일찌감치 피를 토하듯 써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문선희 작가는 80명의 증언에 30컷의 벽 사진을 한 묶음의 책 안에 담아낼 수 있었다. 더불어 그 벽 사진의 제목을 그들 증언에서 빌려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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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8 일러두기 10 13 01 최지연(1980년, 8세) 14 02 김은영(1980년, 8세) 15 <간첩> 17 03 조승기(1980년, 10세) 18 04 이정록(1980년, 10세) 20 05 김용태(1980년, 9세) 21 23 06 정제호(1980년, 8세) 24 07 김용선(1980년, 12세) 25 <피가 모자랍니다> 27 08 정상욱(1980년, 13세) 28 09 정광훈(1980년, 13세) 29 10 장OO (1980년, 13세) 30 <아무것도 못 봤어요> 33 11 소영환(1980년, 10세) 34 12 나용호(1980년, 10세) 35 <그 눈빛을 나는> 37 13 강신철(1980년, 11세) 38 14 문종선(1980년, 10세) 39 <다 끝난 일> 41 15 노상수(1980년, 13세) 42 16 박종식(1980년, 11세) 43 17 최창호(1980년, 9세) 44 18 박수미(1980년, 11세) 45 <학교는 쉽니다> 47 19 조호성(1980년, 11세) 48 20 윤일선(1980년, 11세) 49 <오메오메> 51 21 정지선(1980년, 11세) 52 22 김건(1980년, 11세) 53 23 박지민(1980년, 8세) 54 24 김원(1980년, 11세) 55 <내가 봤어> 57 25 홍성호(1980년, 12세) 58 26 정재운(1980년, 12세) 59 <두근두근> 61 27 이장곤(1980년, 10세) 62 28 이승희(190년, 10세) 63 29 박현민(1980년, 10세) 64 30 나상선(1980년, 10세) 65 <군인은 원래 우리 편인데> 67 31 정재명(1980년, 10세) 68 32 정명운(1980년, 9세) 70 33 박진홍(1980년, 10세) 71 73 34 강성경(1980년, 10세) 74 35 김이강(1980년, 12세) 75 77 36 강선아(1980년, 12세) 78 37 문영학(1980년, 12세) 79 38 강채민(1980년, 12세) 80 39 나진근(1980년, 12세) 81 <잊혀지지가 않아> 83 40 곽은영(1980년, 9세) 84 41 송명재(1980년, 11세) 85 <두두두두두두두> 87 42 김강미(1980년, 11세) 88 43 서상석(1980년, 12세) 89 44 한서희(1980년, 12세) 90 45 김선미(1980년, 8세) 91 <유언비어> 93 46 차수진(1980년, 13세) 94 47 최혜경(1980년, 13세) 95 48 최혜원(1980년, 8세) 96 49 소유정(1980년, 7세) 97 99 50 염수인(1980년, 8세) 100 51 이형석(1980년, 9세) 101 103 52 정선화(1980년, 8세) 104 53 최귀성(1980년, 9세) 105 54 고성주(1980년, 9세) 106 55 김O O (1980년, 13세) 107 <6?25보다 더> 109 56 김현희(1980년, 13세) 110 57 정용재(1980년, 11세) 112 58 고정화(1980년, 11세) 113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115 59 김종원(1980년, 12세) 116 119 60 김옥희(1980년, 11세) 120 61 강석(1980년, 13세) 122 62 김정중(1980년, 13세) 123 127 63 송민주(1980년, 13세) 128 64 주라영(1980년, 8세) 131 133 65 강혜련(1980년, 13세) 134 66 김현대(1980년, 12세) 136 67 정영남(1980년, 13세) 137 139 68 정종민(1980년, 13세) 140 69 하형우(1980년, 13세) 141 70 문영란(1980년, 13세) 142 71 윤세영(1980년, 8세) 143 <용기> 145 72 박국희(1980년, 10세) 146 73 박상순(1980년, 8세) 147 149 74 김보수(1980년, 11세) 150 <축제 아닌 축제> 153 75 오진하(1980년, 11세) 154 76 김동훈(1980년, 11세) 155

Description

1980년 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을 묻다. 2016년 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도 묻을 수가 없다……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또다시 5월입니다. 5월이라 하면 이런저런 기념의 날 참 많기도 하다지요.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내고 스승의 날을 거쳐 성년의 날을 보낸 뒤 그 언저리에서 며칠을 더 머물면 애도의 심정으로 달력 속 숫자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도 된다지요. 18이라는 숫자.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라는 붉은 글씨. 잊지 말라는 나름의 당부가 그 붉음이라 하겠지요. 그날로부터 36년이 흘렀습니다. 직접 겪은 이가 아니고서는 그때 그날들의 특별한 그 ‘겪음’에 대해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터, 여기 한 사람의 젊은 사진작가가 그날의 기억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감을 신고해드리려 합니다. 1978년생으로 사진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문선희. 광주 출신으로 무등산 자락에서 자란 그녀는 1980년에 18개월 된 아기였고, 홍역에 걸려 있었음에도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스스로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이던 언니와 오빠들의 기억이 불러일으킨 사실이었다지요. 바로 이 부분을 힌트로 문선희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되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의거한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한 거지요.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증언 사이사이에 묻어난 그들의 철없는 아이다움에 한량없이 고마웠고, 그들의 이상하고 섬뜩한 어린 날의 파편에 속절없이 아파했다.” -서문에서 문선희 작가는 2년에 걸쳐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80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직접 겪은 그 일에 대한 증언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다행히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꽤 되었습니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오래 쳐다봐주고 오래 만져주는 만큼 벽들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틀림없겠지요. 그래서 광주의 시인 임동확은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일찌감치 피를 토하듯 써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문선희 작가는 80명의 증언에 30컷의 벽 사진을 한 묶음의 책 안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 벽 사진의 제목을 그들 증언에서 빌려오기도 하였고요. 이제는 사십대가 된 당시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듯해도 사사로이 다른데, 어린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이들의 불완전성은 “사건을 미화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게 그 부조리함을 대변하기 때문”에 보다 귀한 사료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다음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말이지요. “그때 YMCA 근처에 수협이 있었고, 그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거기로 가서 보여주셨어요. ‘이게 총알자국이야’라고.-김보수(1980년, 11세) “그리고 아침에 형이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빡’ 소리가 났어요. 보니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벽에 박혀 있었어요. 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형 머리에 맞을 뻔했어요.”-김용선(1980년, 12세) “그 길 사거리를 건너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따다다다, 하고 총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러더니 내 옆에 가던 형이 쓰러졌어요. 나는 어떤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시 후퇴를 했고요. 총을 맞은 형은 그 자리에서 툭, 쓰러져 죽었어요. 죽은 형은 총을 머리에 맞았는데, 얼굴 절반은 형태가 없었어요. 그 바로 옆에 제가 있었고요.”-최창호(1980년, 9세) “날이 더운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솜이불을 해오셨어요. 총알이 솜이불을 못 뚫는다고요. 옛날 집들은 담이 낮아서 총알이 집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김이강(1980년, 12세) “공수부대는 개구리복을 입고 다니면서 학생들을 무조건 잡아갔어요. 대학생들이 주택가로 숨으면 무조건 찾아내서 질질 끌고 갔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부대원들은 돌도 안 피하고, 화염병도 안 피하더라고요.”-서상석(1980년, 12세) “그때는 어렸으니까, 탱크나 장갑차가 지나가도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지 않는 걸 보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문영학(1980년, 12세)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하니까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났다고 했는데, 우리한테 빨갱이라니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어요.”-강혜련(1980년, 13세) “우리 동네에 최미현이라고 나를 엄청 귀여워해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남편은 인성고 교사였고, 그때 미현이 누나가 스물일곱인가 여덟인가 됐었는데 임신중이었어요. 남편을 기다린다고 밖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서 죽어버렸어요. 그때 손수레에 누나를 실어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식구들이 울고불고 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나중에 5?18 묘역에 가니까 미현이 누나 묘가 있더라고요.”-김동훈(1980년, 11세) 『묻고, 묻지 못하는 이야기』, 이 책의 탄생에는 “역사 저편으로 잊혀가는 기억의 조각을 발굴하기 위해 좁은 골목들을 찾아다닌” 문선희 작가의 노고와 사랑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말함의 불가능성’을 품은 채 최대한 정확히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려한 ‘80명 아해들’의 용기도 큰 몫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동일한 사건의 목격자’임은 분명한 까닭에 그들의 목소리 가운데 교집합으로 묶이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사실 너머 진실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바로 새겨줘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80년 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