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인간 내면에 숨겨진 성적 욕망을 그린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문제작 『열쇠』는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 타니자끼 준이찌로오가 70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56세의 남편과 45세의 아내 사이에 벌어진 섹스를 노골적으로 그려 1956년 연재 당시 이미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열쇠』는 남편의 일기와 아내의 일기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형식인데 남편이 병으로 쓰러진 후로는 아내의 일기만 등장한다. 남편이 쓰러지기 전까지 부부의 일기는 서로가 훔쳐본다는 전제하에, 즉 서로에게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씌어진다. 그리고 부부의 일기는 무엇보다 그들 사이에 벌어진 ‘성생활 투쟁’이 생생히 그려진다. 중년을 넘긴 남편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는 대학교수로서 아내의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며 조신한 아내와의 과감한 섹스를 꿈꾼다. 그는 질투를 느껴야만 성충동이 강렬하게 일어나므로 자신의 제자인 키무라가 아내와 사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남편은 키무라와 아내가 어느 선까지 나아갔는지 늘 궁금해하면서 그들이 마지막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아내와 무리한 성관계를 지속하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중년인 그의 아내는 유교적인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나 점차 성에 눈을 뜨게 되고 음부(淫婦)의 성향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편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왔지만 키무라와 관계를 맺은 이후로 급속히 남편을 싫어하게 된다. 그럼에도 남편과의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낮에는 키무라, 밤에는 남편과 관계를 가져도 아내는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 사이에는 과년한 딸이 한명 있는데 이 딸은 엄마가 키무라와 맺어지도록 다리를 놓을 뿐만 아니라 키무라와 엄마가 몰래 만날 수 있는 장소까지 알선해준다. 소설은 남편이 죽은 뒤 아내의 솔직한 고백으로 끝나는데 여기서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아내는 남편이 훔쳐보았을 자신의 일기는 그동안 거짓을 기록했다는 것, 남편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무리한 성관계로 병을 더욱 악화시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것 등을 밝힌다. 남편이 죽은 뒤 앞으로의 계획은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 등장한다. 키무라가 딸과 결혼하는 형식을 취해서 셋이 한집에서 살고, 딸은 세상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해 또 엄마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는 내용이지만 ‘아내’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이처럼 성이란 인간존재의 불투명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성에 집착할수록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점을 작가는 작품에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이 갖는 파멸성도 무섭게 그려낸다. 그대로 살린 원서의 삽화 1956년 『열쇠』 연재 당시 일본인 최초로 세계판화대상을 수상한 무나까따 시꼬오(棟万志功)가 그린 판화가 삽화로 들어갔고, 작가의 요청으로 이 판화 삽화는 단행본에도 실리게 되었다. 이번 창비 번역판에는 정식 계약을 통해 원서의 삽화를 그대로 수록함으로써 원서의 맛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창비세계문학’을 펴내며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가 오직 좋은 책으로 독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비세계문학’을 출간했다. ‘창비세계문학’이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와 닮은 삶을 만나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며,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목록을 쌓아갈수록 ‘창비세계문학’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무르익고 그 감동이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진다면 더없는 보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