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상자

배진우 · Poem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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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배진우 시인의 첫 시집 『얼룩말 상자』가 민음의 시 317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할 당시 “얼핏 단정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송곳처럼 찌르는 구석이 있다.”(오은 시인)라는 심사평처럼, 배진우의 시는 세계를 향한 진중하고 끈질긴 탐구 끝에 문득 방향을 바꿔 던진 질문, 진리에 반동하는 듯한 에너지를 품고 움직인다. 밤새 셔터를 열어 두는 천체 사진가처럼 오래도록 응시하는 배진우의 시는 사물의 모든 순간을 한 컷에 담아낸다. 배진우의 사물들은 완성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귀는 귀를, 숲은 숲을, 이야기는 이야기를 닮아 가는 중이다. 시간의 나열이 아닌 모든 순간의 겹침으로 사물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사물을 향한 우리의 관습적인 서술은 모두 빗나간 것이 되고, 말을 잃은 우리는 이 작고 신비로운 방을 그저 응시하게 된다. 말과 세계 사이, 사물에 가장 근접한 언어를 찾는 입술과 생동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 사이, 배진우는 언어와 인식 사이에 놓인 시차에 머문다. 그 양극단을 부단히 오가며 어긋난 인과를 신중히 새로 잇는다. 그렇게 인과와 무관한 줄로만 알았던 신비의 영역은 배진우의 시를 통해 실체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사물들과 함께, 두 번 반복될 수 없는 얼룩처럼 모든 순간 서로 다른 빛과 형태로 일렁이는 우리 자신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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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1부 내 몸에는 남는 방이 있었다 11 모서리 12 없던 일 14 사물의 월식 16 숲과숲 18 1의 애인 20 부분 22 싸움 28 보이지 않는 도시 30 얇은 방 32 계약 34 덫은 36 코너 40 상자 43 왼손잡이용 햄버거 47 포장 풀린 상자는 상자와 같아서 50 연구 53 2부 창문 없는 방 59 책갈피 서사 60 얼룩말 상자 62 203 67 운 70 비 내리는 비 72 한 명 이후 74 사이 76 마지막 장소 78 스물 80 물의 서사 82 과일 걷기 86 저녁에는 담장이 자란다 89 날개 92 서른 97 빈 꿈 102 노랑 아래 106 환절기 108 3부 봉합된 복도 117 벽에게 118 나의 방 옷장과 천장 사이 스핑크스가 엎드려 있다 122 한쪽 138 비상구 140 영원한 것 뒤에는 무엇이 놓여 있습니까 144 철거하다 149 폴리곤 153 소거법 158 안내 사항 162 작품 해설–최선교(문학평론가) 165 추천의 말–신용목(시인) 179

Description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의 영원히 마를 수 없는 이야기 말과 세계 사이, 언어와 인식 사이, 어긋난 인과를 응시하고 새로 잇는 배진우의 첫 시집 2016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배진우 시인의 첫 시집 『얼룩말 상자』가 민음의 시 317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할 당시 “얼핏 단정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송곳처럼 찌르는 구석이 있다.”(오은 시인)라는 심사평처럼, 배진우의 시는 세계를 향한 진중하고 끈질긴 탐구 끝에 문득 방향을 바꿔 던진 질문, 진리에 반동하는 듯한 에너지를 품고 움직인다. 밤새 셔터를 열어 두는 천체 사진가처럼 오래도록 응시하는 배진우의 시는 사물의 모든 순간을 한 컷에 담아낸다. 배진우의 사물들은 완성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귀는 귀를, 숲은 숲을, 이야기는 이야기를 닮아 가는 중이다. 시간의 나열이 아닌 모든 순간의 겹침으로 사물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사물을 향한 우리의 관습적인 서술은 모두 빗나간 것이 되고, 말을 잃은 우리는 이 작고 신비로운 방을 그저 응시하게 된다. 말과 세계 사이, 사물에 가장 근접한 언어를 찾는 입술과 생동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 사이, 배진우는 언어와 인식 사이에 놓인 시차에 머문다. 그 양극단을 부단히 오가며 어긋난 인과를 신중히 새로 잇는다. 그렇게 인과와 무관한 줄로만 알았던 신비의 영역은 배진우의 시를 통해 실체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사물들과 함께, 두 번 반복될 수 없는 얼룩처럼 모든 순간 서로 다른 빛과 형태로 일렁이는 우리 자신을 마주한다. ■ 정물의 속도 오래 훔쳐본 유리일수록 빨리 녹는다 오래 지켜본 눈일수록 쉽게 잠긴다 ―「싸움」에서 배진우는 사물에 속도를 맞춘다. 사물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인간 기준의 단위가 ‘속도’라면, 배진우는 사물의 단위로써 ‘흔적’을 발견한다. 『얼룩말 상자』의 첫 시 「내 몸에는 남는 방이 있었다」에서 들여다본 ‘몸’의 주름을 시작으로 ‘박스’, ‘나무’, ‘물결’, ‘도시의 밤’ 등 배진우의 화자는 사물 곳곳에서 접힌 자국, 그어진 선, 얼룩 같은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물의 시간과 공간 앞뒤를 살핀다. 『얼룩말 상자』에서 흔적은 사물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표가 된다. 얼굴의 주름이 이전의 감정과 이후의 움직임을 보여 주듯, 배진우의 시에서 ‘흔적’은 과거의 잔해만이 아니라 미래의 모양이기도 하다. 흔적을 통해 사물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배진우를 따라, 우리는 정물의 생동을 마주한다. 소리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다음 순간으로 고요하고 가뿐하게 나아가는 존재들의 힘을. ■ 손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린 그림 덫은 상처의 모양을 생각하고 만든 첫 번째 물건 (......) 덫은 덫을 닮았다 상처는 상처를 닮았고 상처와 덫이 자리를 바꾸고 덫 위와 덫 아래에 있는 고요가 다를 때 한 동작을 앞서가고 있는 것만 같고 물건이 있고 상상이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흉터는 상처를 주는 물건과 닮아 간다 ―「덫은」에서 생동하는 정물은 서로 연결된다. 표제작 「얼룩말 상자」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한 번도 손을 떼지 않고” 그린 그림의 사물들이 복잡한 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배진우의 사물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공명하고 전이되며 때때로 사건을 일으킨다. 「덫은」의 ‘덫’과 ‘상처’는 닮은 모양을 따라 자리를 맞바꾼다. 상처가 있던 자리에 덫이 놓일 때 발생하는 차이는 화자의 상상을 촉발하고, 상상은 사건의 징조가 된다. “나무와 그늘이 있는 곳에 눅눅한 함정”처럼 놓였던 ‘덫’은 그와 닮은 ‘상처’와 ‘흉터’로 이어지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나의 “문제” “잘못” “사랑”으로 이어지며 마음 깊은 곳에 도착한다. 덫, 상처, 흉터, 함정,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 문제, 잘못, 사랑은 한 번도 손을 떼지 않고 그린 그림처럼 하나의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다. “이야기가 없기에 단단한 것”(「싸움」)이었던 정물들이 이야기 가운데 놓이며 살아 움직인다. 무엇이 먼저 있고 무엇이 나중에 왔는지, 무엇이 무엇을 닮아 갔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새로 쓰이는 배진우의 시를 담는 이제 “영원히 마를 수 없는 이야기”(「물의 서사」)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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