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어5.0"아버지의 이름은 김불이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 속에 담겨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주 건조히 쓰여져 더욱 마음 아프게 만드는 문장들이 빼곡하다.Like36Comment0
차민3.5떨어질 운명을 앞둔 작은 공 (스포일러) "형은 이상주의자야." 난장이 가족의 장남인 영수가 공책에 사회의 부조리를 적고 노동 문제의 개혁을 꿈꿀 때 동생 영호가 영수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영수는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인정하기엔 분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영수의 이상은 부질없는 망상이었을까.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공을 쏘아올리는 행위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 이야기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 허공을 가르고 올라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은 대기권을 뚫고 ‘머리카락좌’까지 날아갈 수 없다. 언젠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마는 것이 쏘아올린 공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거대한 로켓이 될 수 있을까. 가난하게 살아가던 난장이 가족들은 어느 날 철거 계고장을 받게 된다. 매일 힘겹게 노동을 하던 난장이는 고단한 삶에 지쳐 병을 얻게 되고, 난장이는 끝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에 가겠다며 공장 굴뚝에서 추락한다. 난장이가 죽은 후 난장이 가족들은 결국 25만원에 집을 팔아야 했고, 가족들이 갈 곳을 잃자 난장이의 딸 영희는 집을 매입한 사내를 따라가서 모진 일을 당하고 아파트 입주권을 훔쳐 온다. 그 후 난장이 가족들은 은강으로 이주해 고된 노동을 하게 된다. 은강 그룹의 부당한 회사 운영에 분개한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은강 그룹의 회장을 죽이려다 착오에 의해 그의 동생을 죽이게 되고, 은강 그룹 회장의 동생을 죽인 영수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생산자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필연적인 대립과 저소득층 노동자 계급의 삶의 비애를 다룬 수작이다. 이 이야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는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와 대립하는 부자들이 있으며 노동자의 편에 서는 부자들이 있다. 노동자의 편에 서는 부자들도 이상주의자와 현실에 순응한 자로 나뉜다. 이러한 부자들 간의 입장 차이는 <우주여행>에서 현저히 드러난다. 이 단편에서 윤호는 “인간이 달을 개조한다고 해도 그곳에 갈 이주자들은 불모의 황무지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고, 지섭은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라고 한다. 지섭은 이상주의자이고, 윤호는 현실에 순응하는 자이다. 이상을 꿈꾸는 자와 현실에 순응한 자는 난장이 가족들 중에도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3장에서 영희는 회고한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달에서는 머리카락좌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머리카락좌의 성운은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나는 영원을 어떻게 느낄 수 없다." 요컨대 영희의 아버지는 오십억 광년 후에나 올 법한 세계를 엿보고자 했다. 그리고 영희에겐 그가 그리던 오십억 광년 후의 세계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영희와 영희 아버지는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지 못했던 영희는 지옥에 살아남았고, 오십억 광년 후의 이상적인 세계를 보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달나라에 가겠다며 공장 굴뚝에서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이상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이후엔 영수도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들의 이상이 꺾인 것은 계급 간의 몰이해 때문이었다. 이 책은 가난한 노동자 뿐만 아니라 부유한 회장의 아들의 입장에서 쓴 단편을 수록해서 계급 간의 몰이해와 엇갈림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부자인 주인공의 사촌은 한 달 임금으로 45.6달러를 지급하고 일을 시킬 경영 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재벌 2세인 주인공은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일을 주고 돈을 주는 것이니, 노동자들이 제일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보다 회사의 이익이 우선 사항이 된다. 반면, 생활에 여유가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목도한 지섭이나 윤호는 진심으로 노동자들의 편에 설 수가 있다. 지섭이 저소득층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한 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난장이 가족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생산자들은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할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따금 부자들의 계몽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을 비추기도 한다. 소설에 나오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의 후반부에서 부자인 주인공은 앙상한 가시고기들이 자신의 그물에 걸려 올라와 자신에게 뛰어오르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깬 주인공은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라고 한다. 즉, 노동자들의 삶에 시종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재판에서도 그들을 냉대했던 제벌 2세조차 노동자들에 관한 꿈을 꾸고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나 갑부들이나 모두 인간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연대한다면 평등한 사회도 충분히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클라인씨의 병>에서 영수는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라고 말하며 갇혀있는 노동자들이나 자유로운 갑부들이나 같은 인간이기에 자신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클라인씨의 병이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물은 실체가 잡힐 듯해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상적인 사회도 그렇다. 사회의 안과 바깥에는 본질이 같은 인간들이 있지만, 현실에는 안팎의 사람들이 서로의 환경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 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주인공이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생각하며 끝난다. 그가 눈을 조금만 돌려서 공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그는 공원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만의 문제가 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그만의 싸움을 해야 했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고 여름에도 시원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는 더 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눈을 팔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죽을 때까지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때로는 욕망을 접어두고, 스스로가 몰랐던 문제에 눈길을 줄 여유와 시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개혁은 모두가 사회의 변두리에 눈을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Like27Comment0
정재훈4.5수시로 바뀌는 화자와 불친절한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묻게 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절대 한가지가 아니리라.Like24Comment0
작가의 말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해설 |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_김병익 신판 해설 | 대립의 초극미, 그 카오스모스의 시학 | 우찬제
영화봤슈
4.0
난쟁이들 쌓아올린 대한민국...
차칸수니리
5.0
빈부격차의 패악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영원한 고전.
강중경
3.0
이 책이 더이상 읽혀지지 않고 공감되지 않을 세상을 여전히 희망한다.
진격의*몽글쌤
3.5
산업화개발독재시대의 소외된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은 저성장청년실업시대의 배척된 나에게로 데굴데굴 굴러들어왔다
비속어
5.0
"아버지의 이름은 김불이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 속에 담겨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주 건조히 쓰여져 더욱 마음 아프게 만드는 문장들이 빼곡하다.
차민
3.5
떨어질 운명을 앞둔 작은 공 (스포일러) "형은 이상주의자야." 난장이 가족의 장남인 영수가 공책에 사회의 부조리를 적고 노동 문제의 개혁을 꿈꿀 때 동생 영호가 영수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영수는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인정하기엔 분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영수의 이상은 부질없는 망상이었을까.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공을 쏘아올리는 행위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 이야기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 허공을 가르고 올라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은 대기권을 뚫고 ‘머리카락좌’까지 날아갈 수 없다. 언젠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마는 것이 쏘아올린 공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거대한 로켓이 될 수 있을까. 가난하게 살아가던 난장이 가족들은 어느 날 철거 계고장을 받게 된다. 매일 힘겹게 노동을 하던 난장이는 고단한 삶에 지쳐 병을 얻게 되고, 난장이는 끝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에 가겠다며 공장 굴뚝에서 추락한다. 난장이가 죽은 후 난장이 가족들은 결국 25만원에 집을 팔아야 했고, 가족들이 갈 곳을 잃자 난장이의 딸 영희는 집을 매입한 사내를 따라가서 모진 일을 당하고 아파트 입주권을 훔쳐 온다. 그 후 난장이 가족들은 은강으로 이주해 고된 노동을 하게 된다. 은강 그룹의 부당한 회사 운영에 분개한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은강 그룹의 회장을 죽이려다 착오에 의해 그의 동생을 죽이게 되고, 은강 그룹 회장의 동생을 죽인 영수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생산자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필연적인 대립과 저소득층 노동자 계급의 삶의 비애를 다룬 수작이다. 이 이야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는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와 대립하는 부자들이 있으며 노동자의 편에 서는 부자들이 있다. 노동자의 편에 서는 부자들도 이상주의자와 현실에 순응한 자로 나뉜다. 이러한 부자들 간의 입장 차이는 <우주여행>에서 현저히 드러난다. 이 단편에서 윤호는 “인간이 달을 개조한다고 해도 그곳에 갈 이주자들은 불모의 황무지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고, 지섭은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라고 한다. 지섭은 이상주의자이고, 윤호는 현실에 순응하는 자이다. 이상을 꿈꾸는 자와 현실에 순응한 자는 난장이 가족들 중에도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3장에서 영희는 회고한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달에서는 머리카락좌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머리카락좌의 성운은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나는 영원을 어떻게 느낄 수 없다." 요컨대 영희의 아버지는 오십억 광년 후에나 올 법한 세계를 엿보고자 했다. 그리고 영희에겐 그가 그리던 오십억 광년 후의 세계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영희와 영희 아버지는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지 못했던 영희는 지옥에 살아남았고, 오십억 광년 후의 이상적인 세계를 보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달나라에 가겠다며 공장 굴뚝에서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이상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이후엔 영수도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들의 이상이 꺾인 것은 계급 간의 몰이해 때문이었다. 이 책은 가난한 노동자 뿐만 아니라 부유한 회장의 아들의 입장에서 쓴 단편을 수록해서 계급 간의 몰이해와 엇갈림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부자인 주인공의 사촌은 한 달 임금으로 45.6달러를 지급하고 일을 시킬 경영 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재벌 2세인 주인공은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일을 주고 돈을 주는 것이니, 노동자들이 제일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보다 회사의 이익이 우선 사항이 된다. 반면, 생활에 여유가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목도한 지섭이나 윤호는 진심으로 노동자들의 편에 설 수가 있다. 지섭이 저소득층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한 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난장이 가족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생산자들은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할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따금 부자들의 계몽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을 비추기도 한다. 소설에 나오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의 후반부에서 부자인 주인공은 앙상한 가시고기들이 자신의 그물에 걸려 올라와 자신에게 뛰어오르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깬 주인공은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라고 한다. 즉, 노동자들의 삶에 시종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재판에서도 그들을 냉대했던 제벌 2세조차 노동자들에 관한 꿈을 꾸고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나 갑부들이나 모두 인간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연대한다면 평등한 사회도 충분히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클라인씨의 병>에서 영수는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라고 말하며 갇혀있는 노동자들이나 자유로운 갑부들이나 같은 인간이기에 자신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클라인씨의 병이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물은 실체가 잡힐 듯해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상적인 사회도 그렇다. 사회의 안과 바깥에는 본질이 같은 인간들이 있지만, 현실에는 안팎의 사람들이 서로의 환경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 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주인공이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생각하며 끝난다. 그가 눈을 조금만 돌려서 공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그는 공원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만의 문제가 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그만의 싸움을 해야 했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고 여름에도 시원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는 더 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눈을 팔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죽을 때까지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때로는 욕망을 접어두고, 스스로가 몰랐던 문제에 눈길을 줄 여유와 시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개혁은 모두가 사회의 변두리에 눈을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재훈
4.5
수시로 바뀌는 화자와 불친절한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묻게 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절대 한가지가 아니리라.
류현선
5.0
이걸 학교에서 배우면 안됐어.. 겁나게 질려서 짜증났는데 나중에 다시 읽으니 이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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