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인가, 환경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좋은 쪽으로, 하지만 좀더 흔하게는 나쁜 쪽으로 말이다. 좋은 식습관이나 규칙적인 운동처럼 건강을 증진하는 행동은 대개 습득하기가 어렵다.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나며, 인간 역시 대다수 동물과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경향성을 띠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즉각적 보상과 처벌은 턱없이 강조하고,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는 보상과 처벌은 지나치게 등한시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경제학자들은 상대적 비교의 역할을 간과한다. 즉 사실상 모든 인식과 평가가 준거 틀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저자는 반복이 효과적인 학습의 중요한 핵심이라면서 몇 가지 표현을 되풀이한다. 그중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아낸 표현이 “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이다. 이는 사회심리학과 경제학의 교차 지점에 놓인 행동경제학의 주된 탐구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에서의 경쟁과 협력에 주목해 연구해온 행동경제학자로서 이른바 ‘행동 전염’ 개념을 통해 그와 관련한 현상을 개괄적으로 조망한다(2부). 3부에서는 흡연, 비만, 문제적 음주, 성 문화, 상호 상쇄적인 낭비적 소비, 에너지 집약적 활동 등 행동 전염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4부에서는 행동 전염 논의의 통찰을 반영한 공공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개인에게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좀더 지원적인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자고 촉구한다. 여기서 저자의 핵심 논리는 과세 제도가 규제 제도보다 지시적이거나 계몽적인 성격은 덜하고 효과는 더 낫다는 것이다. 즉 현재 세수의 대부분을 조달하는 소득세나 지급 급여세처럼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과세는 줄이고, 흡연이나 설탕 든 탄산음료 소비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과세는 늘리는 식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구 검토와 개인적 경험, 풍부한 사례 등을 통해 행동 전염의 효과를 설득하고, 당면한 문제와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뜻깊은 책이다.
사회적으로 이로운 밈의 장려와 해로운 밈의 저지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바는,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공공 정책을 입안할 때 사회적으로 이로운 밈은 장려하고 해로운 밈은 저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어떤 행동을 모방할지에 대한 결정이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도 국민을 과잉보호하는 오웰류의 국가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이런 견해의 밑바탕에 깔린 감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저자는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사회적 힘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이 왜 우리에게 이로운지 설명하고, 그러한 정책을 실시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재 가장 큰 생존 위협으로 기후 위기를 꼽는다. 2018년 10월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4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파괴적 수준으로까지 상승하리라고 보고했다. 여러 기후 모델의 예측치는 악명 높을 정도로 부정확하다. 따라서 지구 기온은 예측치보다 덜 상승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보다 상당히 높게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현재 기온이 섭씨 1도만 올라갔음에도 이미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규모의 홍수·가뭄·화재 등이 빈발하고 있다. 만약 기온 상승이 IPCC의 예측치에 근접한다면 수억 명이 목숨을 잃을 테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부(富)의 상당 부분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반응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미국에서는 그린 뉴딜 지지자들이 기후 변화와 경제 불평등을 동시에 해결하는 광범위한 법률 어젠다를 제안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면 두 영역 모두에서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반대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린 뉴딜 지자들의 편에 선다. 심리학자들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성이라고 정의한 ‘행동 전염’의 위력을 좀더 깊이 이해한다면 그린 뉴딜이 상당히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례 가운데 가장 고비용인 것은 지극히 낭비적인 개인의 소비 의사 결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자동차를 몰면 위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거운 차를 산다. 하지만 모두가 더 무거운 차를 구매하면 모든 사람의 상해와 사망 위험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외려 올라간다. 전염이 어떻게 이러한 소비 패턴을 강화하는지 이해하면 연간 수조 달러를 탄소 프리 에너지원의 지원에 투자하는 정책을 모색할 수 있다. 하나같이 아무에게도 고통스러운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정책이다. 그와 동일한 정책은 경제 불평등을 낮추고 좋은 일자리의 창출을 촉발한다.
흡연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
어떤 사람이 흡연을 하게 될지 말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담배 피우는 친한 친구의 수가 몇이나 되느냐다. 누군가가 흡연자가 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동료 집단에 흡연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집단의 구성원은 모두 흡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흡연 습관을 들인 이들은 다시 동료 집단 구성원 모두의 흡연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동료에 의해 좌우되는 사람이 강압적으로 흡연 습관을 들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행위 주체성’을 가지며, 실제로 그런 압박을 이겨내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친구 집단에서 흡연자가 한 명 늘어나면 거의 확실하게 그 집단에 속한 또 다른 한 사람이 흡연자가 되거나 계속해서 흡연자로 남게 된다.
흡연을 비롯한 비만, 문제적 음주 등 공중보건 영역에서 행동 전염은 강력한 역할을 한다. 7장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들을 소개하는데, 그 결과들은 개인이 그러한 문제에 이르는 행동을 바꾸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한 행동은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맥락과 평가 간의 관련성
맥락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인간의 결정이 평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그 판단은 다시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맥락은 거리 같은 일상적인 물리량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친다. 만약 자동차로 여섯 살배기 딸과 부모님 댁을 가는 중인데, 딸이 “거의 다 왔어요?”라고 묻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동 거리가 20킬로미터인데 15킬로미터 정도 남았다면 아마 “아니, 아직 멀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200킬로미터인데 똑같이 15킬로미터 남았다면 “응, 거의 다 왔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맥락과 평가 간의 관련성은 행동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공공 정책에 관한 수많은 논의에서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시된다. 대체로 그것은 대다수 정책 관련 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전통적 경제 모델에서 맥락이 인간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로몬 애시의 피험자(28~29쪽)가 자신의 감각이 말해주는 분명한 증거를 기꺼이 무시한 결과를 연상케 하는 행위와 관련해, 경제학자 대부분은 사람들의 구매는 남들이 무엇을 사느냐와 완전 별개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맥락은 분명 그것이 거리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자동차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