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소설로 동시에
타이완의 문단과 음악계를 뒤흔든 젊은 천재의 데뷔작!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다.
이로부터 타이완 문단은 우수한 소설가 한 사람을 새로 얻게 되었다”
_ 금전장 본선 심사위원 마스팡(馬世芳)
타이완 양대 문학상인 금전상(金典賞) 수상작!
타이완 문단을 뒤흔든 젊은 천재의 데뷔 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야관순장(夜官巡場)’으로, 밤의 신이자 낮은 자들을 위한 신인 야관(夜官)이 길 잃은 영혼들과 귀신들의 행렬을 데리고 밤 행차에 나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 장자샹은 ‘좡커런’이라는 타이완 인디 록밴드의 보컬이자 리더로, 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를 출간하기 전에 동명 앨범을 먼저 발표했고, 같은 테마와 세계관을 지닌 음악과 소설 모두 크나큰 호평을 얻었다. 장자샹은 타이완을 주빈국으로 하여 열리는 이번 2025 서울 국제도서전에 밴드 멤버들과 함께 참석한다.
■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진 사람들이 온다
들판의 신, 밤의 신이 되어서 온다
공자는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을 실천했다고 한다. 공자 본인도, 그리고 그를 본받는 제자들과 군자들도 괴력난신, 즉 기괴하고, 초현실적이며, 흉흉한 사건과 귀신 혹은 온갖 신에 대한 이야기를 믿거나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군자가 아닌 대부분의 민중들은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귀신과 신이 등장하는 괴력난신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이는 ‘8백만 신의 나라’라고 불리며 유교의 영향이 일상에서 미치는 영향이 덜했던 일본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전체가 공유하는 정서로, 귀신 이야기를 금기시하면서도 무엇보다 이에 빠져 드는 마음가짐이다.
동아시아에서 귀(鬼)와 신(神)은 같은 것의 양면과 같다. 죽은 자가 ‘귀’가 되고, 그가 잘 대접을 받으면 ‘신’이 된다. 특히나 타이완은 귀와 신의 경계가 한국처럼 분명히 나뉘지 않고, 각종 절기에 온갖 신령을 모시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타이완 시골 자이현 민슝 지역. 이곳에서 태어난 소년은 늘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갑갑한 집을 떠나고, 망고 나무 그늘이 드리운 고향을 멀리 떠나고만 싶어서. 그의 친구인 소녀 저우메이후이는 귀신과 신을 보는 영안(靈眼)을 지닌 ‘야관불조’의 화신이다. 소녀는 제 아버지가 목매달아 죽은 천장의 선풍기 소리를 듣고, 소년은 마을 곳곳에서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들과 마주친다.
낮에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정신(正神)이 다스리지만, 밤이 되면 들판의 신, 밤의 신인 야신(夜神)이 억울한 사연을 안고 죽은 초라한 귀신들을 데리고 행차하는 이곳. 이제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의 이면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으로 되살아난다.
■ 타이완 시골 들판에서 펼쳐지는
초현실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향연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타이완 남부 지역의 작은 산촌에서 나고 자란 작가인 ‘나’가 고향과 가정의 갑갑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땅으로 가게 된 ‘떠남’의 기억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정신적인 귀환을 실현하는 ‘돌아옴’의 기억, 그리고 과정을 자전적 형태로 서술한 소설이다.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유년의 기억과 그때의 심리가 타이완 고유의 불가와 도가, 토착 민간 신앙이 결합된 신화 혹은 귀신 이야기에 투영되어 전개되며, 허구적 요소가 비교적 적은데도 마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특수한 형태의 판타지를 구성한다.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타자화한 작가 개인의 삶의 기록이라는 사실선, 그리고 작가의 삶을 둘러싼 무수한 귀신들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탐구와 서술이라는 판타지선이 날줄과 씨줄로 텍스트 전체를 구성하면서 독특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장자샹은 유년의 기억을 지역 야사와 민간 신앙,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사건 등과 결합시켜 신선하고 담백한 수사로 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와 리얼리티라는 양극의 속성을 동시에 극대화시킨 타이완 시골 들판 기담이라고 할 수 있다.
■ 피 맺힌 역사의 주인공들이
신이 되어 돌아오다
장자샹이 앨범 「야관순장」과 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를 발표하자 타이완의 음악계와 문단은 동시에 들썩였다. 이 젊은 예술가는 장제스, 장징궈 부자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사용이 아예 금지되었던 타이완 고유어인 타이완어로 유년 시절의 경험과 고향을 떠나 이방인이 된 자의 행로를 그려 냈다. 타이완어는 중국 남부 지방의 방언인 민남어와 네덜란드어, 타이완 원주민어 등이 혼합된 복합적인 언어로, 현재 타이완에서는 공용어로는 표준 중국어(관화 혹은 만다린)를 사용하고 있지만, 타이완어의 사용도 이제 점차 다시 활성화되어 가는 추세다.
그는 창작을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타이완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타이완어를 잘 구사하지 못했고, 음악 작곡과 연주 역시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수단으로 타이완어로 쓰고 노래하는 음악과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 같은 움직임에 현재 타이완 문단과 음악계에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동참하고자 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평론가들과 동료 문인들의 격찬을 자아 낸 것은 장자샹이 타이완의 피 어린 역사를 소환해 온갖 괴력난신의 이야기 속에 풀어놓았다는 점이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의 숨겨진 역사적 배경에는 1947년에 벌어진 2·28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제주 4·3 사건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거장 영화감독 허우샤오셴이 걸작 영화 「비정성시」를 통해 담아낸 이야기가 바로 이 사건이다.
국공내전에서 패하여 타이완으로 도주해 온 장제스의 국민당 세력은 표준 중국어인 관화의 사용을 강요하고, 억압적이며 잔혹한 반공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7년 2월 27일, 정부의 전매품인 담배를 사적으로 팔던 한 여성 행상이 단속반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해 결국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같은 단속과 억압에 진저리를 치던 타이페이 시민들은 항의에 나섰고, 곧 타이완 전역으로 이 물결이 퍼져나갔다.
‘본성인’인 타이완 시민들과 ‘외성인’인 국민당 정부군은 사실상 서로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고, 내전에 가까운 충돌은 결국 2만 8천 명가량으로 추측되는 타이완인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막이 내렸다.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타이완에는 195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28년 동안 계엄이 실시되었고, 수시로 백색 테러가 일어나 많은 이들이 투옥되거나 사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타이완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타이완어로 창작을 하고, 2·28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국이 4·3 사건과 광주를 이야기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장자샹은 소설과 음악을 통해 2·28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인 루빙친의 이야기와, 그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후가 어땠는지를 사실과 허구로 엮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공적인 역사와 문서의 언어는 정서와 상처를 담지 않는다. 귀신과 신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중은 세계 어디에서나 환상과 공포, 슬픔이 어린 이야기들을 통해 옛 상처를 회복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문학이 갖는 힘이 바로 이런 것임을 젊은 작가 장자샹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