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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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하夏·상商·주周 계시록 살육과 인신공양제사, 식인 카니발리즘을 떠받친 거대 제국과 인간 사냥꾼들의 공조 체제 고대사의 인식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책 중국 출간 1년 만에 40만 부 돌파 주나라 건국 이후 치밀하게 자행된 과거사 지우기는 문왕·강태공, 주공·공자의 허구적 이미지를 만들었고 복수의 책 『역易』을 지혜의 책 『주역周易』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무려 3000년의 역사를 공백으로 덮어버렸다.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니, 역사에는 과연 전쟁과 죽임이 가득 차 있었으나, 어휘들이 감성의 직관적 인지를 걸러버려서 ‘몰입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은 유골의 사진을 보면서 인신공양제사의 살육 현장을 환원하여 살인자와 피살자의 심리 세계에 들어가보려고 시도했으나, 항상 압력을 감당할 힘이 없음을 느꼈다. (…) 이 벗어날 수 없는 공포의 여행은 마치 시체로 가득 덮인 황야를 홀로 걸어 지나는 것과 같았다.” _저자 후기 ◆ 상고시대 인신공양제사의 분류 ◆ ◆ 거대 곳집府庫의 수수께끼 ◆ ◆ 가장 잔인했던 샤오솽차오, 다스쿵 취락 ◆ ◆ 북방의 식인 부락 ◆ ◆ 최초의 찜 쪄진 사람 머리 ◆ ◆ 상나라 귀족 자제의 포로 사냥 수업 ◆ ◆ 발굴된 문왕의 지하 작업실, 드러난 복수 계획 ◆ ◆ 64괘는 왜 짝을 이루는가? ◆ ◆ 아들 백읍고의 고기를 먹고 성분을 증명해야 했던 문왕 ◆ ◆ 『역경』 속의 상나라 정벌 모략 ◆ ◆ 정복자를 맞이하는 은허 ◆ ◆ 공자, 주공의 수수께끼를 풀다 ◆ 한국 출판역사상, 중국 고대사에 대하여 이만큼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은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알고 있던 상나라 주왕紂王, 주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강태공, 주공 단, 공자는 조작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2022년 10월 중국 광시사범대학출판사에서 『전상翦商』이란 제목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독서계가 떠들썩해졌다. “상나라를 베다” “상나라 정벌”로 옮길 수 있는 이 책은 ‘은주殷周 혁명과 역경易經의 비밀’이라는 자극적이고 미스터리한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제목과 부제는 본문의 내용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었다. 중국 대륙과 곧바로 번체로 옮겨 출간된 타이완의 독서계는 이 책이 알려주는 역사 내용들을 접하고 전율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자들을 움직이는 ‘실용적인 동기’이다. 즉, 생존의 모티브가 역사를 이끌어온 추동력이었다. 이 책은 신석기시대부터 부족국가와 초기 국가 단계를 거쳐 하·상·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 초기 문명의 성격을 완전히 다시 써내려간다. 그 핵심 키워드는 사람을 죽여 제사에 바치는 인신공양제사가 종교적 수준에까지 이른 광적인 카니발리즘 국가가 ‘상나라’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상나라 혹은 그 도읍 은殷을 따 은나라로 불리는 이 국가는 강역이 대단히 넓고 수많은 방국을 거느린 고대 제국의 문명 단계에 이르렀다. 문명이 심화될수록 광적인 종교행위도 심해졌고 수백 년간 지속했다. 상나라 이후 등장한 주나라는 말하자면 그 하수인이자 심복이었다. 즉, 상나라의 인신공양제사에 바칠 인간 희생을 전문적으로 사냥해서 바침으로써 방국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윽고 그 절정에서 힘을 키워 상나라를 무너뜨린 이후 체계적인 과거사 은폐에 돌입했다. 이후 3000년이 지나 묻혀진 인골과 갑골들이 드러나기 전까지 이 반문명적인 문명의 존재를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게 했다. 저자의 해부학적 시선은 예제국가와 종법국가의 기틀을 다진 주나라의 기원으로 향한다. 초기 주족周族의 리더인 고공단보古公亶父부터 시작해 계력季歷, 문왕에 이르기까지 주족周族은 상나라에 예속된 상태로 동족인 강족羌族을 사냥하여 상나라의 제사에 쓰일 인간 희생으로 바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계력과 문왕의 장자 백읍고伯邑考가 인간 희생으로 바쳐졌고, 심지어 문왕과 다른 자식들은 백읍고의 살로 만든 육장肉醬을 먹어야 했다. 도덕적이고 인자한 성왕으로 알려진 문왕은 알고 보면 비정한 인간 사냥꾼이었고, 그 자신이 유리羑里의 토굴에 갇혀 인간 희생의 후보자가 되었을 때는 인육을 먹고 와신상담하며 반역을 준비했던 효웅梟雄이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돌아와 자기 저택의 비밀 토굴 속에 숨어 몰래 편찬한 『역경』은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라 그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자, 상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은밀한 계획이 담긴 책이었다. 그리고 서부의 작은 강족 부락의 수령이었던 강태공은 은허의 백정으로 비천하게 살다가, 상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의 원수였을 수도 있는 문왕과 공모했다. 현량하고 점잖았다고 평가받는 주공도 한때 인간 사냥꾼의 일원이었고, 형의 살로 담근 육장을 먹음으로써 생긴 심리적 충격으로 남은 평생에서는 밥 먹을 때 종종 구역질에 시달렸다. 그리고 상나라를 멸한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제사를 근절하고, 상나라에 복역했던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숨기기 위해 역사 왜곡을 통한 기억의 조작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일족 전체가 술에 취한 채 전율할 만한 살육과 식인으로 피에 굶주린 광기에 몰두했던 상족의 잔인한 풍속은 면죄부를 받고, 일체의 죄악은 ‘부덕한’ 주왕紂王 개인에게 돌려졌다.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형炮烙刑 등으로 대표되는 주왕의 죄악이 실은 상족 전체의 종교적 풍속이었던 것인데, 주공의 기억 조작으로 인해 주왕 개인의 죄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스스로 신격화한 존재로서 왕실의 귀족까지 제사의 희생으로 바치며 상족 특유의 종교에 몰두했던 제신帝辛은 ‘의롭고 선한 것을 해치는殘義損善’ ‘독부獨夫’인 ‘주紂’라는 죄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저자가 ‘옛 화하 문명’이라고 규정한, 야만의 상태로 흩어진 부족을 정벌하여 잔혹하게 다스린 상 왕조까지 중국은 사실상 딱히 무언가로 아우를 수 있는 집합이 아니었다. 주족처럼 족외혼의 풍습을 가진 몇몇 부족 사이에 약간의 연맹 관계는 있었을 테지만, 족내혼의 관습을 가진 부족도 적지 않았으므로, 대륙의 부족들은 그야말로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의 무리 같았다. 그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집단—작자가 ‘새로운 화하 문명’이라고 부르는—을 이룬 것은 주 왕조가 이룩해낸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공은 거기서 야만적인 피비린내를 즐기던 ‘신권’의 그림자를 없애고, 그 빈자리에 인간의 ‘덕’을 채워 넣었다. 그러므로 그의 역사 왜곡은 그야말로 ‘선의’의 그리고 당시로서는 거의 ‘최선’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실증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유가의 ‘성인’ 공자가 『역경』 속의 비밀을 간파한 뒤에도 오히려 주공의 역사 왜곡에 동의하고, 심지어 ‘육경六經’의 편찬을 통해 주공의 정신을 더 정교하게 반영한 것은 그러므로 상족의 후예로서 자기 조상의 치부를 가려준 데에 대한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에 절은 ‘야만의 문명’을 배척하고 ‘인문’의 따스함을 간직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당위성을 공감한 결과였던 셈이다. 제자를 가르칠 때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얘기하지 않고, 무덤에 인형을 부장하는 행위마저 저주했던 그의 소신과 언행이 지향한 궁극적인 목표인 ‘어짊仁’은 바로 ‘사람人’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전상翦商 즉, 상나라를 정벌하여 멸한 주나라의 역사 이면에 숨겨진 경악스럽고 전율할 만한 이 비사祕史들은 최근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과 갑골문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한 옛 문헌의 다시 읽기를 통해 밝혀진 것들이다. 물론 이 비사들을 역사의 적절한 자리에 다시 배치하여 설명한 데에는 저자의 예리하고 정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