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 Novel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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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가 알라딘과 함께 제작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대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특별판이다. 뵐은 동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억압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작가로, 이 작품은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이자 독특한 형식과 논리적인 전개로 전후 독일의 정신적 폐허를 냉철하게 응시한 문제작이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성실하고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는 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을까. 그녀의 닷새간의 행적을 재구성함으로써 평범한 한 개인이 언론에 의해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동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작품은 익명의 화자가 등장해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여러 증인의 진술들을 토대로 살인 사건을 재구성하는 보고 형식이라는 독특한 서술 형식을 취한다. 이미 시작 부분에서 기자를 살해한 범인이 카타리나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 독자는 사건의 보고서를 읽으며 살인의 동기와 배경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의 처참한 이면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1970년대 독일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테러리즘에 대한 논쟁과 언론의 폭력에 대해서도 뵐은 함구하지 않았다. 그 어느 권력보다도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구조화된 폭력, 언론의 폭력을 문제 삼은 그의 이 작품은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문제작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시청률과 판매 부수에 죽고 사는 상업주의 언론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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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9 10년 후―하인리히 뵐의 후기 180 작품 해설 191 작가 연보 203

Description

“그래요. 왜 그를 죽이면 안 되나요?”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문제작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민음사 제작, 알라딘 특별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74년 출간 당시 6주 만에 15만 부가 팔렸으며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렌도르프가 영화화해 크게 흥행하기도 했다. 뵐은 동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소외받고 억압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작가로, 그의 대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이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 그녀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아와 자신이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성실하고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는 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을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그녀의 닷새간의 행적을 재구성함으로써 평범한 한 개인이 언론에 의해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동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고발한다. 독특한 형식과 논리적인 전개로 전후 독일의 정신적 폐허를 냉철하게 응시한 문제작이다. ∎ 근면하고 소박하게 살았을 뿐인 한 평범한 여인의 진술 Vs. 왜곡, 허위 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의 보도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2월 20일 수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보기 드물게 진실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치고 가택 수색을 벌이더니, 급기야 그녀를 연행해 가기에 이른다. 괴텐은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있는 질 나쁜 인물로, 그동안 계속 언론과 경찰이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는 것. 카타리나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는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카타리나는 시골 마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와서 식당 서빙 일에서부터 가정부 노릇까지 해 가며 돈을 모아 작은 아파트와 중고차를 마련한 소박하고 근면한 여인이다. 남에게 빚지고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맡은 바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또한 인심도 넉넉한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하룻밤 사랑을 나눈 운명적인 남자가 경찰에 쫓기고 있음을 알고 그에게 도주로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경찰에 연행, 심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소식은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시야에 포착된다. 끈질긴 특종 사냥꾼 퇴트게스의 사냥감이 된 그녀는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녀의 아파트가 모의의 본부였나, 아니면 도당들의 아지트, 혹은 무기를 거래하는 장소였나?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인 가정부가 어림잡아도 110,000마르크나 나가는 아파트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은행에서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했나?/ /살인범 양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한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 퇴트게스의 소설 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기사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교회 재산을 절도한 파렴치범이 되고, 그녀 자신은 타고나길 “얼음처럼 차갑고 타산적”이며 범죄자와의 정사도 마다하지 않는 “창녀”와 같은 인물이 된다. 그러나 카타리나에게는 이러한 날조된 기사에 반박할 아무런 힘이 없고, 그녀의 명예와 존엄은 처참하게 짓밟힌다. 그리고 그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살인이었다. 허무맹랑한 날조와 왜곡을 남발하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른 가운데, 카타리나는 경찰의 심문에 응해 차분히 진술을 이어 간다. 그녀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 조서에 기재되는 것을 거부하며,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고자 심문 과정 내내 민감한 태도를 유지한다. 블로르나 부부를 가리킨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놓고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졌다. 조서에는 “나에게 친절한”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블룸은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선량한”이라는 단어가 유행에 뒤진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이 단어 대신 “호의적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그녀는 화를 냈으며, 친절과 호의는 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 준 블로르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주장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술하지 않는 카타리나의 언어는 조작적인 언론의 언어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언론의 폭력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지를 처절하게 보여 준다. ∎ 주변 사람들의 외면 그리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퇴트게스의 얼토당토않은 기사 내용보다 더 카타리나를 좌절케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다. 한때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선량한” 지인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게멜스브로이히의 신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였고 어머니는 내가 측은한 마음에서 한동안 청소부로 일하게 해 주었더니 미사용 포도주를 훔쳐 제의실에서 정부와 술판을 벌인 적이 있지요.” 이혼한 전남편, 우직한 방직공인 빌헬름 브레틀로는 더욱 흔쾌히 정보를 주었다. 그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녀가 왜 내게서 몰래 떠났는지. …… 그녀는 출세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떻게 올곧고 소박한 노동자가 포르셰를 탈 수 있겠습니까? ……그녀를 좋아하는 나의 복잡하지 않은 애정보다는 살인범이자 강도인 한 남자의 다정한 애무를 그녀가 더 좋아했다는 것을 듣는 마당에, 그래도 난 그녀에게 호소하고 싶군요. 나의 귀여운 카타리나, 당신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소.” 나이 든 농부 메펠스가 말했듯이, 다른 회원들도 소름 끼쳐 하며 카타리나를 외면했다. 그녀는 항상 기이했고 항상 새침하게 굴었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이 전화로, 익명의 편지로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쏟아 붓고, 그녀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공산주의자’라며 몰아댄다.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언론이 왜곡, 날조한 기사 내용는 그 대중이 심심풀이로 입방아를 찧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고, 그렇게 카타리나는 세상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언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간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임을 보여 주는 이 장면은, 오늘날과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유포, 확산되는 시대에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머와 그 루머를 둘러싼 댓글의 홍수. 익명성을 업고 개인을 매장시키는 군중심리의 무서운 특성은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건조하고 담담한 보고서 작품에 실린 후기에서 그리고 표지의 제목 아래에서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특별히 강조한다. 이에 대해 옮긴이 김연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야기’는 화자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내용으로 삼고, 청자 역시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산업과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널리 보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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