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살기 위해 우리는 불효를 선택했다.”
지긋지긋한 효도 강요 세상에 선사하는
열세 편의 불효 자랑집!
어려서부터 부대끼던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모성애, 든든한 아빠, 끈끈한 가족, 내리사랑 같은 것들. 가만 보면 쟤네 집도 엉망이고 얘네 집도 난장판인데 왜 다들 ‘그래도’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니까, 그래도 아빠니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살면서 우리는 아마 각자의 지옥에서 합리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만하면’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말입니다. 그렇게라도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 때문인지 덕분인지 매일을 보태어 우리는 여기까지 자랐습니다.
자라는 동안 수많은 ‘그래도’와 ‘이만하면’에 배반당해온 작가 열세 명이 이 책에 모였습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효도를 거부하면 늘 불효녀와 불효자 등 지긋지긋한 성별 이분법으로 호명당했습니다. 이 단어를 우리는 ‘불효꾼’으로 바꿔 부르려 합니다. ‘꾼’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잘하거나 즐기는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효꾼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은 굳이 풀어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세간의 말에 자꾸만 미끄러지던 불효꾼들이 작은 축제를 엽니다. 착취, 폭력, 도청, 방임, 차별 등으로 가정이 곧 가시밭 같았던 우리는 이 축제에서 기지개를 켜고 자신의 목격과 경험을 부르짖습니다. 이곳은 온통 시끄럽고 뜨겁습니다. 이 사람들의 가족과 가정은 당신의 것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또는 매우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각자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당신과 같다면 함께 목 놓아 울어도 괜찮겠습니다. 다르다면 있는 대로 바라봐주세요.
불효꾼들이 어떤 불효를 구체적으로 행했는가 살피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전국불효자랑』 집필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불효를 행했다며 각자의 가정에서 손가락질할 테니까요. 예로부터 가정사를 바깥에 허락 없이 발설하는 행위를 큰 불효 중 하나로 여기는 한국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일을 겪고 찾은 배설 혹은 복수의 방식이 글쓰기라면, 그 또한 나름의 효도 아니겠어요?
그러니 결국 우리는 완벽한 불효에는 실패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니 실은, 누구보다도 완벽한 효도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일 테지요. 가족과 가정이 조금만 더 나았다면, 아니 세상이 완벽한 형태를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효도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었다면 오히려 이 책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는 더 만만치 않습니다. 불효하기 어디 쉬운 세상이어야 말이지요.
그 어려운 걸 열세 명의 불효꾼이 해냅니다. 대단히 대담한 이들의 자기고백을 당신께 보냅니다.
용기와 사랑 그리고 분노를 담아.
_「기획자의 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