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하드보일드 학파의 창시자 대실 해밋 “나는 탐정소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언젠가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만드는 누군가가 나올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이기를 바랄 정도로 나는 이기적입니다.” 20세기 대중문화의 성장과 더불어서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들은 전문 잡지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만개하기 시작했다. ‘펄프 픽션’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용어 자체는 문학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대중의 흥미에 영합하는 작품들로 폄하되었다. 그러한 미스터리 장르에서 문학성과 예술성을 최초로 인정받은 작가이자 아직까지도 이 장르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대실 해밋은 그 존재감이 독특한 거인이다. 앙드레 지드와 앙드레 말로 같은 유럽의 지성들을 포함해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 마이클 코널리 같은 장르의 대가들도 그의 글에 경배를 바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글에서 ‘날카로운 칼과 같은 과격한 매력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학파의 학장‘이라고 그를 평가했고 『붉은 수확』과 『몰타의 매』는 각각 <<타임>> 지와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영미 문학 100선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현재 최고의 장르소설을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북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추리소설상은 대실 해밋의 장편에서 이름을 딴 ’유리열쇠 상‘이다. 빔 벤더스가 그의 삶을 영화로 옮겼고 코언 형제의 데뷔작도 그의 작품들에서 스토리를 빌려온 것이다. 퀜틴 타란티노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펄프 픽션>의 원래 제목은 ‘블랙 마스크’였는데 <<블랙 마스크>>란 잡지는 창간 초기부터 대실 해밋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실어 미스터리 장르 문학의 요람이 된 잡지였다.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기를 바란다는 앞의 인용은 대실 해밋이 그의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에 보낸 편지의 일부인데 그의 희망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인된 사실이 되었다. 대실 해밋은 이처럼 미스터리 장르 전체 안에서 창시자인 에드거 앨런 포와 더불어 가장 존재감이 큰 작가이다. 대실 해밋을 단순한 장르소설의 달인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문학의 큰 별로 인정하게 만든 것은 그가 작품들을 통해 하드보일드란 장르의 정점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란 말이 범죄소설 장르의 일종으로 뜻이 전용되기는 했지만 하드보일드의 원래 의미는 ‘폭력에 의해 촉발된 감정- 불안, 두려움, 고뇌 -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대실 해밋이 창조한 캐릭터 샘 스페이드와 무명의 사립탐정 컨티넨털 옵은 셜록 홈즈나 푸아로 같은 전 시대의 ‘좀 더 부드러운’ 탐정들처럼 사건을 해결할 뿐 아니라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폭력적인 사건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사건의 해결에만 몰두한다. 사실을 재구성하는 데 감정이입은 오히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데 방해만 된다. 조직적인 범죄가 창궐하던 금주법 시대는 범죄 조직도 타락했지만 그에 대항하는 체제의 조직도 범죄 조직만큼 타락했다. 사회의 타락이 범죄 조직의 융성을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폭력과 범죄의 악순환 속에서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시대에 냉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영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집에는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 수록된 대실 해밋의 걸작 단편 중 9편이 실려 있다. 작품 모두 작가의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컨티넨털 탐정이 등장한다. 해밋의 단편들 또한 그의 장편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장르를 뛰어넘어 20세기 단편소설의 최고작들로 거론되는데 대실 해밋이 어떻게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의 대가를 넘어서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범죄와 그 뒤에 벌어지는 참혹한 배신극을 그린 「크게 한탕」과 그 속편격인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를 비롯해 수수께끼의 살인 사건 뒤에 숨겨진 중국의 항일 운동이 흥미로운 「중국 여인들의 죽음」, 유사 신흥 종교에 빠져 피해를 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불탄 얼굴」 등 대실 해밋의 모든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빼어나다. 「국왕 놀음」이라는 작품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의 보헤미아 공국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현지인들과 거의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황에서 쿠데타와 그에 연루된 미국인 청년의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미스터리 소설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이런 대담한 이야기는 아마도 대실 해밋이 아니고는 시도도 못할 정도로 발상이 탁월하고 전개도 사실적이다. 미스터리 장르의 독자들뿐 아니라 세계문학 애호가들의 호기심도 충분히 자극할 만한 대실 해밋의 단편들은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