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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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을 감상하고 예술을 사유하다”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느끼고 감상하는 사상의 즐거움 사상은 머릿속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철학의 제1원리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상의 세계를 대표해왔다. 이 말은 사상이란 철학자와 선구자 들이 생각 끝에 내놓은 관념적인 무언가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는 이처럼 사상을 머릿속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이거나 들리는 것 혹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사상이란 신기루일 뿐일까? 이 책의 저자는 사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상도 그렇다. 그리고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 책은 25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예술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현대사상을 현실에 현상해낸다.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하버마스와 브뤼헐, 소쉬르와 피카소의 연관성은?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의 물질성 책에서 연결하고 있는 사상가와 예술가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쇤베르크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브뤼헐 또한 자신의 그림이 하버마스 사상과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는 기존의 법칙을 자연법칙인 양 따르려는 당시 음악계의 분위기에 맞서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낸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자본주의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착취를 은폐하거나 당연시하는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마르크스를 듣는다. 그리고 정해진 소실점 없이 흐트러진 현실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식’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결사(結社)를 이루는 브뤼헐의 그림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합리적 공동체를 추구했던 하버마스의 모습을 본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 단계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반면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한다. 사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현대의 생각을 탐구하다 저자 박영욱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문화와 예술에 천착했다. 그는 예술작품의 미덕이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의 오감(五感) 중 예술작품이 일상에서 구현해낸 시각, 청각, 촉각에 집중하여 사상을 풀어낸다. ‘1장 현대사상을 보다’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등 낯선 조합이 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2장 현대사상을 듣다’는 쇤베르크, 바그너, 루솔로, 영의 음악을 통해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와 베르그송의 사상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삽입했다. ‘3장 현대사상을 만지다’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허스트의 설치예술, 추미의 건축물을 통해 라캉과 바타유의 사상 또한 피부로 느끼듯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 감각을 통해 현대사상을 체험한다면 나중에 그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현대사상의 개념들을 육감(六感)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사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실체 없는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과 이어지는 예술작품과의 공통점을 보고 듣고 만진다면 사상을 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현대사상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여행서가 될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며 이해하고 감상하는 현대사상 저자는 책에서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그 안에서 찾아낸 사상과의 연결고리를 설명한다. 다음은 회화작품, 음악작품, 조각작품을 통해 설명한 사상가의 핵심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현대사상을 보다 _사르트르와 마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누드화다. 그때까지의 누드화의 여인들이 살짝 눈을 내리까는 등의 방법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피한 것과 달리, 작품 속 여인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이를 통해 보는 이는 자신이 그녀의 벗은 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올랭피아>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순간, 그 불순한 의도를 그녀에게 들키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늘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며 늘 다른 상황과 비교하고 현재에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하는 존재다. 이렇게 무언가 부족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데 자유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할수록 오히려 자유에 갇히고 만다.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시선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상을 듣다 _베르그송과 영: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우리는 음악이라고 하면 일정한 박자를 가진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린다. 그런데 라 몬테 영의 <컴포지션 1960 7번>은 그렇지 않다.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이 전부인 음악이다. 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들었던 숲이나 강의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악보에 옮겨놓을 수 없다. 자연을 악보에 담는다는 말은 그것을 분절하여 일정 공간에 담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지속하는 것이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영은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으로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그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 있다. 자연뿐 아니라 삶 또한 나누거나 공간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24개로 나누어 세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의 본질과 멀어진다.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진정한 삶이란 <컴포지션 1960 7번>이 들려주는 것처럼 공간화되지 않으며 나눠지지 않고 순수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현대사상을 만지다 _메를로퐁티와 로댕: 몸을 위한 예술, 몸을 위한 활동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완벽한 조각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을 꼽자면 <생각하는 사람>은 1, 2위를 다툴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 이 조각상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그 조각상을 보는 순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작품의 거친 표면 또한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몸의 현상학자로 유명한 메를로퐁티는 이렇듯 우리의 경험은 모두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접시가 깨지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자. 접시가 깨지는 현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그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자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은 우리가 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