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교수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 혼란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경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인류 최대의 현안인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 이제껏 잘해오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선진국들의 기후 대응의 현 주소가 드러났다. 기후 변화 문제가 국제 사회에 불거진 1988년부터 약 한 세대 동안 인류를 대표한다는 정치인과 기업인이 써내려간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노 로고』, 『쇼크 독트린』 두 권의 밀리언셀러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기후 변화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역학을 치밀하게 파고든 문제작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2014년 UN 기후 변화 정상 회담에 맞춰 조직된 대규모 시민 기후 행진 일주일 전에 발간되도록 기획되었으며, 출간 직후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서라는 찬사를 받으며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남편 아비 루이스가 연출하고 본인이 직접 내레이터로 참여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상영 중이다. 5년간 진행한 방대한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 과학자와 경제인, 환경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결실을 맺은 이 책은, 오늘날 기후 위기의 본질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방대한 자료 속에 녹아 있는 저자의 생각은 명료하다.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는 집단, 그 집단을 후원하며 녹색 경제로의 이행을 막고 있는 자본가들, 그리고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채취주의 사고방식이다. 저자는 총 13장에 걸쳐 대중들 사이에 만연한 기후 변화 부정론의 근원, 대형 환경 단체와 채취 산업의 불편한 커넥션, 탄소 감축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던 탄소 거래제의 참담한 실패, 기후 변화를 물리적으로 막기 위한 지구 공학자들과 억만장자들의 엉뚱한 프로젝트, 세계 각지의 기후 전선에서 채취 산업에 대항하는 블로카디아 운동의 급속한 전개 상황 등을 종횡무진 추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가 불타는 걸 이대로 지켜볼 것인가
우리는 지금 화석 연료를 태우기 시작한 이래 섭씨 0.8도 상승한 지구에 살고 있다. 이 책이 인용한 연구 자료에 따르며, 1970년대 세계 전역에서 가뭄과 홍수, 극단적인 기온 변화, 산불, 폭풍 등 656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자연재해는 무려 다섯 배나 많은 3,654건으로 급증했다. 3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우리나라가 전례 없는 폭염과 미세 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던 2016년 6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는 35년만의 대형 홍수가 발생했다. 불과 보름 전인 2016년 5월 19일,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의 팔로디 마을에선 수은주가 51도까지 올라가면서 인도 사상 최고 기온을 찍었다. 미국 해양 대기 관리처NOAA에 따르면 올해 4월은 137년 기상 관측 이래 4월 기온으론 가장 따뜻한 달을 기록했다).
0.8도가 이 정도인데 그 이상 올라가면 어떤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세계은행은 2012년 보고서를 통해 <섭씨 2도에 도달하거나 이를 넘어서면 서남극 대륙 빙하가 녹아내려 급격한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거나, 아마존 밀림에서 대규모 고사가 진행되어 생태계와 강, 농업, 에너지 생산, 생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의 추세로 섭씨 2도의 임계점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년밖에 없다는 게 기후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 협약이 합의한 섭씨 2도라는 목표도 위험한 수준이거니와 이조차 선진 공업국이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매년 8~10퍼센트 감축할 때 이뤄질 수 있는 목표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와 같은 도전에 직면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정부와 과학자들이 온실가스의 급격한 감축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은 <올해의 행성>이라는 표제로 『타임』지 표지에 밧줄에 칭칭 감긴 지구가 실린 1988년이다. 1992년 각국 정부들은 리우에서 제1차 UN 지구 정상 회의를 열고, <UN 기후변화 협약UNFCCC>에 서명했고, 1997년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하지만 정부 간 협의체는 20년 동안 90회가 넘는 공식 회의를 하면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11년 더반에서 열린 UN 기후 회의에서 캐나다의 스물한 살 대학생이 각국 대표들을 향해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협상만 하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릴 정도였다. 기후 협약 논의가 한창이던 1990년을 기준으로, 2013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려 61퍼센트나 늘어났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저자는 최근 25년간 경제와 환경 두 부문에서 진행된 자유 무역 협상과 기후 협약의 평행이론에 주목한다. 1992년 최초의 기후 협약이 체결되던 그해 공교롭게 북미 자유 무역 협정이 체결되었고, 1995년에는 세계 무역 기구가 출범했다. 이어 중국이 세계 무역 기구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1980년대에 시작된 무역 및 투자 자유화의 흐름은 최고조를 맞았다. 하필, 경제의 세계화 흐름이 급속히 진행되는 시점에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무역과 기후 협상이 이처럼 병렬적으로 전개되었지만, 각국 정부 대표는 심지어 1992년 리우 지구 정상 회의에서 채택된 기후 협약은 고 못 박고 있다. 기후 문제가 불거진 이래로 기후 대 자본주의의 전쟁은 언제나 아이와 어른의 축구 시합이었다.
구세주는 없다
해리스 여론 조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석 연료의 지속적인 사용이 기후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는 미국인들의 비율은 2007년 71퍼센트에서 2009년 51퍼센트로 감소했고, 2011년 6월에는 44퍼센트로 나타났다. 전 세계 기후 과학자들의 97퍼센트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경고하는데도 왜 인류의 생존이 달린 사안이 대중들 사이에서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인식되고 있을까?
대중들이 기후 변화에 무관심한 데는 일종의 안이한 믿음도 깔려 있다. 갑자기 새로운 신기술이 나타나서, 또는 억만장자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 줄 거라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러한 믿음을 <주술적 사고>라고 명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국의 버진 그룹 총수 리처드 브랜슨이 한 예다. 브랜슨은 『불편한 진실』의 저자 앨 고어를 만난 뒤 예수를 만나 회심한 바울처럼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거액을 투입하겠다고 담대한 계획을 제안한다. 향후 10년간 버진 항공과 철도 부문에서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30억 달러)을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생물 연료와 기타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또 하나는 버진 어스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기후 변화를 막는 기술을 발명하는 사람에게 <과학과 기술 분야 최고의 상금> 2,500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빌 클린턴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고, 『뉴요커』지는 <이제껏 지구 온난화 대응책으로 제시된 것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약속>이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10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브랜슨이 투입한 금액은 약속한 액수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