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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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인간인 한에서만 놀이하며,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다.” _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과 관련하여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는 미학이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하는 것이다. 한스 페터 발머의 책 『철학적 미학-초대』 역시 우리와 동일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미학 이론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이론들 각각이 실제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하는 한 편의 철학적인 에세이이다. 여기에는 ‘자유롭되 진지하게’라는 모토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으로 정식화된 이래, 미학은 철학의 한 분과라는 위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난다. 바움가르텐에서 시작하여 칸트와 실러, 일군의 독일 낭만주의자들(하만, 헤르더, 슐레겔, 노발리스), 독일 관념론자들(피히테, 헤겔, 셸링),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어, 니체, 그리고 듀이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단계들은 앞선 담론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통 철학에 대한 비판과 극복으로 이해된다. 일련의 미학적 움직임 속에서는 이성의 폭력성과 추상성에 맞서 인간의 정신에 보다 높은 자유를 보장하고 그에 기초된 인간의 삶을 최대한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이 발견된다. 중요한 것은 철학과 미학, 이성과 감성이 상충적인 것이 아니라 응당 상보적인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성은 감성적으로 되어야 하고 감성은 보다 높은 정신으로 고양되어야만 한다. 이성의 절대성을 거부하고 모든 것이 각자의 권리에 따라 평등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설득하는 것, 추상적 논변의 허울을 벗겨 근원적 생명의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포착된 만유의 삶을 자유의 세계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미학의 주제이자 대상이다. 미학은 삶이 폭력적이거나 피상적으로 되지 않도록 우리를 늘 깨어 있게 만드는 작업이자, 우리의 삶 속에서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하나의 실천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미학의 정점을 헤겔이 아니라 니체에게서 발견한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탐색의 자리마다, 우리는 대지 위에서 하나의 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인간은 고통과 결핍, 슬픔, 절망, 우울 등으로 점철된 생의 비루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늘로 머리를 두르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언제나 슬픔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하강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는 상승하고자 하는 “애타는 목마름” 역시 존재한다. 예술은 이러한 결핍과 동경의 산물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말과도 같이, 바로 예술을 통해 대지 위의 뭇 존재들은 ‘이곳’을 벗어날 유일한 상승의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가 지닌 결핍과 동경은 그가 마침내 상승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따라서 사소한 것에서도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자, 모래알 하나에서 전 우주의 형상을 감지하는 자, 한 자락의 바람결에서 전 인류의 흐느낌을 듣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세상의 눈물을 함께 흘리는 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자, 한 마디로 자신의 몸이 들려 주는 소리에 집중하여 그것을 밖으로 표명하는 자, 그럼으로써 저 높은 자유의 한복판에서 세계와 기꺼이 조우하며 기뻐하는 자야말로 유한자로서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자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삶을 위해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삶이 지닌 은현하고도 그윽한 맛을 ‘음미’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미학’이라고만 해도 충분했을 제목에 저자가 ‘철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이제야 완전히 이해된다. 칸트, 실러, 니체, 그리고 듀이와 같은 사상가들을 거치면서 미학은 경험의 독특한 의미를 밝혀 줄 새로운 가능성으로 등장하게 된다. 가슴에 아로새겨진 것들을 표현하고, 지각된 것들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며, 이곳과 저곳을 하나로 연결할 그러한 가능성과 능력으로서 말이다. 섬세하고 순수한 감정으로부터 나온 예술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연대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미학은 바로 이러한 경험의 장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따라서 미학은 엘리트적 주관성의 특권도 아니요, 또 도무지 불가해한 예술 창조에 관련된 어떤 특수 분야도 아니다. 미학은 가상을 위한 것도, 또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적인 것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을 위한 근간이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바로 이 위에서 이루어진다. -역자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