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못생긴 엄상궁과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 격랑 속 대한제국 황실 이야기 2010년 올해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주권과 인권을 침탈한 경술국치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그 아픔의 역사를 되새기고 잊지 않으려는 서적들이 유독 주목을 받은 한해였다. 그러나 역시 100년 전 그 시기는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역사의 트라우마 같은 시간일까? 여전히 그 시대를 다룬 저작물들은 치욕적 사실과 뼈아픈 고증을 외면한 채 빈약한 사료에 기대어 자극적인 내용만 되풀이하고 있다. ≪덕혜옹주≫에 대한 표절 시비가 그 일례다. 덮어둔다고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듯 외면과 망각 속에 안주한다고 해서 비극적 역사가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유를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첫걸음은 100년 전 우리의 자화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한해를 마감하는 이때 망국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대한제국 황실 이야기 세 권-≪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의 푸른역사 출간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작 ≪윤동주 평전≫(푸른역사)을 통해 “견고한 작가이며 사학자”(고은)임을 인정받은 송우혜는 이번에도 역시 풍부한 자료 섭렵과 빈틈없는 고증으로 대한제국과 마지막 황태자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폭넓은 식견, 독보적 연구, 방대한 문헌자료를 통해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생애와 그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은, 정확한 역사 해석을 위해 만년의 나이에 같은 주제로 박사학위에 도전하기까지 한 저자가 혼신의 공을 들인 10년간의 결과물이다. 특히 저자의 치밀한 자료 검증은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조화를 이뤄 한층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송우혜는 이번에 출간된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를 “다큐 소설”이라 말한다. ⊙방대한 드라마의 시작이 된 일본에서 날아온 황태자의 애처로운 성적표 책의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권의 책을 지탱하는 큰 중심축은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이다. 조선 말 명성황후의 등장에서부터 대한제국 선포, 그 멸망까지의 방대한 드라마를 그려낸 저자 송우혜가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를 쓰게 된 출발점은 의외로 소박했다. ≪순종실록부록≫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이 인질이 되어 끌려간 일본에서 공부할 때 거둔 우수한 학업 성적에 관한 단편적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은이 일본 학습원에서 거둔 우수한 성적에 관한 기록들은 내가 그간 막연하게 알고 있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실체와 구체적으로 대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자신의 궁궐을 떠나서 말과 풍광이 다른 외국에서 인질로 살아가던 외로운 소년 황태자 이은의 애처로운 삶이 구체적인 형태로 눈앞에 떠올랐다. 그 불우한 아이가 일본인 동급생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노력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가 그런 역경에서도 거둔 우수한 성적을 통보받은 순종이 느꼈던 크나큰 환희와 상쾌한 경악과 이은에게 걸었던 막중한 기대치가 그 짧은 전보문의 문장 안에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음을 밝히 알아볼 수 있었다. …… 곧 그가 겪은 개인사의 한 면을 드러내는 사건이자 그가 살던 시대의 모습과 속성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시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그걸 느끼자 마음 깊은 데서 그 시대 사람들 및 그들의 슬픔과 고통과 꿈에 대한 관심이 요동치듯 치솟았다. 그리하여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마지막 황태자 1≫ 중에서 ⊙대한제국에는 엄상궁이 있었다―최초로 조명되는 이은의 생모 이야기 1권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에서는 이은의 생모인 궁녀 엄상궁이 궁중 권력을 장악한 끝에 ‘황귀비皇貴妃 엄씨’ 곧 ‘엄귀비’로 불리게 된 과정과 영친왕으로 책봉된 열 살 소년 이은의 왕비를 간택하는 초간택이 치러진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엄상궁’은 ‘대한제국’을 말하기 위한 핵심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간 누구 하나 주목한 이가 없었다. 이번에 출간된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는 이은의 생모인 엄상궁의 행적을 처음으로 발굴, 조명했다는 데 의미가 남다르다. 엄상궁은 뛰어난 지력과 당찬 뱃심, 사람들의 심리를 환하게 들여다보는 투시력에다 놀라운 정치 감각과 남다른 권력욕까지 갖춘 여걸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관파천’을 결행한 주역이 바로 그녀였다. 아무튼 조선조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기괴하고 착잡하고 극적이고 이상한 사건이었던 ‘아관파천사건’은 누가 뭐래도 엄상궁의 작품이었고, 그녀가 지녔던 대담한 담력과 고도의 연출력이 아니었더라면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당시 상황과 정세로 보아서는, 그런 형태의 모험을 구상하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짓으로 보였으리만치 최악의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마지막 황태자 1≫ 중에서 1권에서는 또한 이은의 약혼녀 민갑완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엄밀하게 추적해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다수 바로잡고 있다. 지금까지 진실 그대로인양 받아들여져 온 민갑완의 자서전 ≪백년한≫에는 민갑완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많다. 저자는 당시 신문 기사들과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관변 사료들, 그리고 당시 쓰인 개인 문집 등을 꼼꼼히 살펴 그간의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사실 민갑완은 이은의 재간택 대상으로 뽑혔던 ‘7인의 규수’ 명단에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다. 초간택 행사로부터 다섯 달 뒤에 이은이 황태자로 책봉되고, 다시 다섯 달 뒤에 인질이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자, 엄귀비는 재간택 대상도 아니었던 민갑완을 ‘황태자 이은의 약혼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배후에는 각 가문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감안한 고도의 정치역학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이 일 또한 그 무참했던 난세의 복잡하고도 기괴한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책 곳곳에서 상세한 자료와 근거를 들어 잘못 알려진 사실과 용어를 바로 잡는 데 적지 않은 할애를 하고 있다. ⊙황태자 이은 일본인 만들기―어린 인질 이은과 이등박문 2권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에 격변이 일어났던 1907년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1907년 7월 고종이 태황제로 물러나고 순종이 새 황제로 등극하자, 곧이어 영친왕 이은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당시 초대 한국 통감으로 서울에 주재하면서 그 정치적 격변을 주도한 이등박문은 이때를 대한제국을 삼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이등박문이 구상하고 추진한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한제국의 황태자가 된 열 살 소년 이은을 일본에 끌고 가는 인질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은을 일본 황족 여성과 결혼시키는 혼혈결혼작전이었다. 그것은 장차 대한제국을 일본에 병탄시키려는 가공할 만한 야욕에서 나온 전략이었다. 이등박문은 먼저 이은의 재간택 절차가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았다. 이은을 일본 황족 여성과 결혼시키려면 미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신문 지상을 요란하게 장식하는 집요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등박문의 구상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1907년 12월,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은 이등박문의 손에 이끌려 인천에서 일본 군함에 오른다. 이등박문은 자주 임지인 서울을 비워놓고 동경에 가서 이은을 돌보는 데 공을 들였다. 성실한 몸종처럼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깍듯하게 소년 이은을 모셨으며, 자신의 저택인 창랑각도 선사했다. 평생 친자녀나 친손주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는 일이 드물었을 정도로 냉엄했던 ‘명치천황’ 이등방문이 이은에게만은 파격적으로 따뜻하고 살갑게 굴었던 것이다. 2권에서는 이러한 이은의 일본 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