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 Essay
3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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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선집 제14권.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단지 사적 삶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애정과 갈등을 둘러싼 개인적 삶의 곡선은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건들의 좌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벤야민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모스크바의 인상학이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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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게르숌 숄렘 서문 5 전면 개정판 서문 13 옮긴이의 말 17 모스크바 일기 31 부록 1 : 모스크바 275 부록 2 : 편지들 323

Description

가장 내밀한 ‘인간’ 벤야민을 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모스크바 일기』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게르숌 숄렘(Gershom Sholem)의 말처럼, 벤야민의 삶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 가운데 가장 사적이면서 철저하고도 냉정하리만치 진솔한 기록을 담고 있다.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단지 사적 삶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애정과 갈등을 둘러싼 개인적 삶의 곡선은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건들의 좌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벤야민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모스크바의 인상학이 메우고 있다. 아샤 라치스와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벤야민 사상에 끼친 영향 숄렘에 의하면, 벤야민이 모스크바에 가게 된 세 계기가 있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연인 아샤 라치스(Asja Lacis, 1891~1979)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둘째는 레닌에 의한 10월혁명 이후 러시아의 상황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형성해보고, 그와 더불어 그가 벌써 2년 이상 고민하고 있던 독일공산당 가입 여부에 대해 결단을 내리려는 바람에서였다. 끝으로 여행을 나서기 전에 떠맡았던 문학적 의무들에 대한 고려가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벤야민은 그를 위해 모스크바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그 삶, 말하자면 모스크바의 ‘인상학’에 대해 통찰을 얻고자 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와의 약속에 따라 잡지 『피조물』(Die Kreatur)에 실린 장문의 글 「모스크바」이다(이 책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모스크바」는 사실상 『모스크바 일기』의 초안들을 크게 재구성해서 쓴 것으로 관찰과 상상력이 강렬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되어 나온 믿기 힘들 정도의 섬세함이 놀라운 글이다. 이 가운데 연인 라치스와의 관계를 다룬 부분이 이 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모스크바로 벤야민을 불러들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숄렘은 이 『모스크바 일기』를 일컬어 “좌절된 구애의 이야기”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라치스의 영향이 향후 벤야민 사상의 변곡점으로 큰 영향을 행사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둘의 관계가 썩 심상치 않았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1924년 이탈리아에서의 첫 번째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라치스에 다가간 벤야민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서로 다른 계급적 기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인 벤야민과 라트비아 프롤레타리아의 딸 라치스 사이에 걸쳐 있는 계급적 심연 그 자체였다. 라치스는 독일인 대농장주의 노예였던 할아버지와 하느님과 차르에 대한 순종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던 어머니, 공장 노동자이자 사민당 당원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완고한 규칙과 관습들로 삶을 얽어맨 부르주아적 소시민성”에 대한 깊은 혐오를 키워오던 공격적 무신론자였다. 더불어 그녀는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절감, 이를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을 통해 실천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벤야민은 한마디로 “부유한 집안 출신의 견실한 지식인”이었다. 비록 계급적 심연은 깊었으나, 이 만남을 통해 벤야민에게는 서서히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단초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즉 카발라적 언어철학과 보들레르를 위시한 근대문학을 향해오던 그의 관심은 점차 문화, 예술, 철학의 물질적ㆍ역사적 기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의 자각과 수용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것이 사회주의 혁명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를 분석한 저 유명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그런 사유의 산물이다. 물론 벤야민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단초가 전적으로 라치스의 영향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감정과 느낌들을 숨기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의 그녀가 자주 벤야민의 자의식을 공격함으로써 그를 강제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라치스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던 벤야민을 비판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산당에 가입하기를 종용했으며, 그의 사상이 관념적인 상아탑 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으나, 결코 둘 사이가 언제나 긴장감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벤야민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소개해주기도 했고, 벤야민 역시 라치스에게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를 소개해준다. 기묘한 관계 속에서 모스크바에서 보낸 두 달여의 기간! 사실, 모스크바 체류 당시 벤야민과 라치스는 기묘한 관계 속에 있었다. 라치스를 만났을 당시 벤야민은 아내 도라와의 사이에서 아들 스테판을 두고 있던 유부남이었고,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해 혼자 딸 다가를 키우던 라시스는 오스트리아 출신 연극비평가 겸 연출가인 베른하르트 라이히(Bernhard Reich)와 동거 중이었다. 이전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벤야민은 라치스를 만나면서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벤야민을 만나면서도 라치스는 라이히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더구나 벤야민은 라이히와 지적 교류를 나누던 사이였다. 이 기묘한 삼각관계가 벤야민이 겪었을 또 다른 심리적 긴장과 갈등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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