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순간
과거와 현재를 초월하는 신화가
시간의 껍질을 깨고 나올 때,
인간의 오래된 미래는 장엄하고 숭고하게 펼쳐진다
* 국내 유일의 ‘앙코르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그때까지의 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관광객처럼 힐끗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공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찾는 답사기행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해외’로 옮겨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래도 전문지식과 접근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앙코르 와트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앙코르 와트는 그 규모나 예술성이 충격적일 정도의 놀라움을 준다. 그러나 보이는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종교·사상 등 깊이 있는 전문지식과 심미안, 그리고 오래 두고 반복해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 년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는 이 모두가 담긴 국내 유일의 ‘앙코르 문화유산답사기’이다.
저자는 오랜동안 인도와 주변지역을 여행하거나 오래 머물며 인도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다져왔다.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꿀 수 있다》를 펴내며 인도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던 저자는 인도 문화를 기반으로 이룩된 앙코르 와트를 일곱 번이나 방문하며 얻은 지식과 감동을 다시 이 책에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은 앙코르 와트 여행을 위한 단순 안내서가 아니라, 앙코르 와트로 떠나기 전에 사전지식을 쌓기 위해, 그리고 앙코르 와트를 다녀와서 다 보지 못한 또는 보고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부분을 찬찬히 확인하는 데 아주 좋은 해설서가 되어줄 것이다.
* 은밀하게 고인 천 년의 고독한 시간과 만나다
프랑스의 동식물학자이자 앙코르 와트를 처음 재발견한 앙리 무오는 앙코르 와트를 둘러보면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인류에게 남겨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장엄하다’고 감탄했다. 그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이 유적으로 인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서도 쉽게 증명된다.
젊은 시절부터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앙드레 말로는 앙코르 와트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특히 반티 스레이 여신상을 보는 순간, 그 가치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 아름다운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점이자 추문으로 기록된 밀반출을 시도하다가 문화재 불법 반출 혐의로 체포당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정수이자 돌로 쌓아올린 우주의 축소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때문에 책이나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된 유적지를 실제로 보고도 실망하지 않는 곳 가운데 하나이고, 가본 사람이 다시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설계·조각·부조 등의 완벽한 조화로 몇 번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앙코르 와트. 이 신비롭고 웅장한 폐허에서 깨어난 아름답고 광활한 대서사시를 들어보자.
나는 지금 막 보고 돌아온 멋진 건축물에 대한 황홀한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주 웅장한 유물이 존재한다는 것, 서양의 고대 문명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 이상으로 완벽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유적이
아시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둘러 알리고 싶다.
―앙리 무오(프랑스의 동식물학자)
나는 갑작스러운 공포감에 휩싸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두상의 얼어붙은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미소도 보았다. 그런 미소가 셋, 다섯, 열, 아니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 거대한 눈들이 사방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반쯤 감은 눈, 불가해한 미소와 자비의 표정을 내보이며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피에르 로티(프랑스 소설가)
* 앙코르 와트를 잉태한 서사시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캄보디아 역시 국가 성립 단계부터 인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해 왔다. 앙코르 와트 유적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원의 건축 양식은 물론 아름다운 조각 작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인도 신화 및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떼어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에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옛이야기 들려주듯이 쉽고 재미있게 요약해, 여느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앙코르 와트의 깊은 의미를 알게 하였다.
<라마야나>는 ‘라마 왕자가 걸어온 길’, 혹은 ‘라마 왕의 여정’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마 왕자와 악마로 묘사되는 라바나의 전쟁 이야기가 담겨진 서사시에는 모든 제왕이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군주상과 함께 힌두교 신화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위대한 바라타 가문의 전쟁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마하바라타>는 인도 델리 북쪽의 쿠루 평원에서 사촌 형제끼리 왕권을 놓고 벌이는 18일 동안의 치열한 전쟁 이야기가 배경이다. 정의의 화신인 판다바의 맏형 유디스티라와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카우라바군의 맏형 두료다나 사이에 벌어진 그 전쟁에서 두 집안은 사촌 간의 싸움에 대한 번민과 갈등 속에서도 정의와 관련된 여러 가지 교훈을 들려준다.
또한 그 안에는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한 인도의 지성인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영향을 끼친 <바가바드 기타>가 실려 있기도 하다.
* 오래된 친구의 집, 앙코르 와트
바람에 취한 사람처럼 세상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는 저자는, 1993년부터 최근까지 주로 인도와 그 주변 국가를 여행하고 있다. 그렇게 인도 대륙과 이웃 나라들을 전전하다가 오래된 친구 집을 방문하듯 종종 찾던 곳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앙코르 와트를 벌써 일곱 번 찾았다. 오래되고도 참 그리운 친구의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곱 번을 만나고도 다시 또 보고 싶어지는 것은, 앙코르 와트가 주는 충격과 경이로움이 몇 번을 반복해 봐도 언제나 새롭고 또 놀랍기 때문이다. 특히 앙코르 와트와 만날 때마다 제일 먼저 찾아간다는 타프롬에 대한 저자의 감회에서 앙코르 와트가 가진 거대한 시간과 공간의 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마저 일순 정지한 것처럼 여겨지는 그 공간은 장엄하고도 평온하다. 우리네 삶과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천 년의 시간이 고즈넉하게 고여 있는 폐허의 타프롬에선 과거와 현재가 다른 언어가 아니며, 영원과 순간의 구별마저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천 년 동안 열대의 정글 속에 신화처럼 잠들어 있다 막 깨어난 유적, 앙코르 와트. 그 웅장한 역사의 이면을 헤아리는 저자의 글에서 그 웅장한 폐허를 오래되고도 그리운 친구로 느끼게 된 저자의 마음에 동감하게 된다.
앙코르 유적을 품에 안은 드넓은 정글로 어둠이 내려앉는 걸 지켜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남아시아를 호령하던 앙코르 제국의 역대 왕들 또한 저 숲에 잠들어 있을 터였다. 이제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고 혹독한 세월을 견뎌낸 유적들만 천 년의 신화와 함께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