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팝아트의 대표자, 앤디 워홀의 철학을 엿듣다!
철학이라고 하면 내용과 전개가 어려워서 지루해지기 쉬운 글이라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앤디 워홀의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미리 주눅 들기 쉬운데, 실상 내용은 주눅 들게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사변적인 글이 아니라 감각적인 글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겁거나 깊지 않고, 발랄하고 경쾌하다. 또한 냉소적이면서 슬프고 섬세하고, 때로 장난기가 넘친다. 무표정하면서 꼼꼼하기도 하다. 사념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생활과 일에서의 자기 정리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워홀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1970년대 중반 발표된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앤디 워홀의 모든 것을 담은 글이다. 이 책에 그려진 워홀은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예술계의 거장이라기보다는 자기 삶과 일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며 끊임없이 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일상의 단면들이 20세기의 예술과 문화를 주도했던 이 놀라운 인물이 남긴 예술과 사상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최고의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일상적인 것이 갖는 힘에 주목하라는 것이 진정한 워홀의 철학인지도 모른다. 사적인 인간으로서의 앤디 워홀, A가 말한다. 사랑, 섹스, 음식, 아름다움, 명성, 일, 돈, 성공에 대해, 뉴욕과 미국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앤디 워홀을 대하면 떠오르는 사물과 풍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물과 풍조를 먼저 꼽는다면 1960년대 미국의 사회 문화적 축약물들, 맥도날드 햄버거, 깡통 음식과 미니스커트, 흑백텔레비전, 히피와 평화봉사단, 뉴프론티어 정신, 그룹사운드의 발호, 대중과 광고의 세력화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이 그 시기 생활의 주변이면서 중심이었던 사물과 풍조였다. 사람을 들자면 미합중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와 그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1929~1994), 그리고 불멸의 육체파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1926~1962) 등이 있다. 그들은 전후의 풍요와 소비로 각인된, 워홀과 동시대를 강렬하게 살아가던 이들로, 보통 미국 사람들보다 좀 더 미국적이라는 인상을 짙게 남긴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을 하나 들라고 하면 다 같이 불운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절정기를 맞이하던 순간에 암살과 자살 등으로 불행하게 목숨을 잃었고, 함께 죽지 못하고 남겨져 고통 받았다. 또한 그들은 미국적인 영광과 질곡을 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워홀적이다. 워홀은 매릴린과 재클린 두 여성을 1960년대의 자기 작품 소재로 다루어 예술적 토대를 확고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한 화재(畵材)로의 기용은 관심과 친애의 표시였으나, 결과적으로 대량생산과 소비에 대한 부정적 표현 수단이 되었고, 그 때문에 워홀은 반어의 귀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워홀이 화가로서 자신을 가장 크게 부각시킨 화법은 실크스크린 기법이었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 소비를 풍자적, 냉소적으로 찌르기 위해 고안한 기법이었다. 워홀은 판화 기계로 이미지를 한 번에 수백 점씩 대량으로 찍어 대량생산 사회를 꼬집었다. 그 뒤 똑같은 이미지 하나하나를 다르게 만들어 차별화시켰다. 그것은 이미지마다 색깔을 다르게 칠해서 모습을 다르게 만듦으로써 가능했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상업 미술에 도입한 화가는 워홀이 처음이었다. 그의 실크스크린 기법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것은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도 순식간에 넓게 번져 나갔다. 미국 전역을 돌고 나아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일본까지 퍼졌다. 불편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흡인력을 가졌던 것이다. 이름하여 팝 아트, 팝 아트의 황제. 그는 예술을 광고화하고 땅에 내려오게 하여, 대중이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는 없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길거리의 건달이 마시는 콜라나 모두 같은 것이다. 근엄하지 않고 평등하고 쉽다.
그는 부정적인 긍정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았다. 출생과 사랑, 결혼에 대해 그는 늘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도에 포기하는 식의 부정(否定)을 하지 않았으며,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었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었다.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비즈니스는 최상의 예술이었다. 사후 소더비에서 그의 유품을 경매했을 때 경매는 9일이나 계속되었고, 총 경매가는 2천만 달러에 달했다. 열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소지한 물건도 많았던 것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아주 비신앙적이고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살았다. 동성애와 코 성형수술 등 신의 비위에 맞지 않을 행위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후기의 작품들 중에 종교적인 주제와 신앙심이 묻어 나는 것들이 많았고, 유품에서도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보내고, 후배들을 물질적으로 후원했다. 그는 혼자 있을 때 신앙이 깊었다. 그의 장례 미사가 열린 피츠버그의 세인트존 성당에는 2천여 명의 추모객이 모여들었다. 그는 긍정적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사적인 인간으로서의 앤디 워홀, A가 말하다
그는 테이프 레코더와 결혼했다. 지인들과의 대화를 항상 녹음해 두었다. 녹음하기 위해 일부러 대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 책은 그의 다른 책처럼 녹음 내용과 전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테이프 레코더와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그는 책들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테이프 레코더는 아내 역할을 단단히 한 셈이다. 화자인 A의 혼잣말 혹은 A와 끝없이 사람이 바뀌는 B와의 수다로 구성된 독특한 이 책은, 평범한 자서전과는 달리, 지인과 수다를 떨듯이 편안한 말투로 미국과 뉴욕, 사랑과 섹스, 돈과 일, 성공과 음식, 자신과 타인, 그리고 아름다움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아울러 '팝아트'의 사상을 검토한다.
〈태어나는 것은 납치되는 것과 같다.〉
〈주말 오후 백화점 남성복 코너에서 남편의 속옷을 고르는, 저 많은 중년 여인들을 좀 보라. 결혼은 결국 이렇게 요약된다.〉
〈임신은 시대착오적이다.〉
〈섹스는 일이다.〉
쾌락이 아니라 책무와 구속으로서의 일.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것은 납치나 유기와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거부하고 자식을 두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세간의 추측처럼 리비도가 거의 없어서였을까.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앤디 워홀의 모습은 상상하기 무척 어렵다.
그는 미국이라는 가능성과 자유의 괴물이 낳은 신화다. 변두리 이민자 삶의 터럭에서 시작해 심장부를 가르면서 타오른 불꽃이었다. 그 불꽃이 남긴 불티는 아직 꺼지지 않고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