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지금이야말로 시대의 조류를 타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도 아첨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사상을 자신 있게 말하고, 그를 통해 시장(세계)을 바꿔나갈 수 있는 ‘참된 사상가와 사상을 가진 편집자’가 둘 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_낙운해(洛雲海)의 서평 중에서 ∥책 소개 저자.편집자.독자라는 시대의 거울에 비추어 사상사를 재조명하다 독자는 저자의 사상을 텍스트의 형태로 만나고, 더 나아가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현실과도 새롭게 만난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 간의 소통 과정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적어도 20세기 전후의 사상사를 이해하는 문제에서 이런 질문을 다루는 게 마땅하다면, 이 책은 하나의 토론 자료로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사상과 예술의 각축장이던 서구 지성계는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권위가 파괴되고 새로운 지적 운동이 세차게 전개되었다. 더욱이 현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 신학은 전쟁과 나치즘이 휩쓸던 시기에 걸출한 신학자들이 벌인 저항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이미 20세기 지성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파울 틸리히의 「조직신학」,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같은 저작은 단지 신학 분야만이 아니라 당대의 지적 담론을 아우르는 역작들이다.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파울 틸리히는 고국에서 신학자로서 못 다 이룬 학문적 과업을 미국 땅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바, 여기에는 그의 사상의 텍스트를 새로운 지적 운동의 추세에 걸맞게 재편하고 가다듬도록 애쓴 동료 신학자들, 그리고 그의 텍스트를 재발견해낸 편집인들의 화답과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스위스의 시골 목사로서 혁신적인 문제의식으로 성서 해석에 몰두했던 바르트의 경우, 당시 독일 표현주의운동에 크게 감화되어 이를 출판 행위로 끌어들인 오이겐 디더리히스 같은 편집자가 없었다면, 자신의 역작 「로마서 강해」가 빛을 보거나 신학사상사에 큰 충격을 줄 수 없었다. 저자인 후카이 토모아키는 한 시대의 사상사를 이해하는 전제로서 저자와 독자라는 틀을 넘어 저자와 편집자 그리고 독자라는 삼자 관계의 틀에 비추어 사상의 전후와 안팎을 두루 살펴볼 때 비로소 특정 사상의 텍스트에 얽힌 시대의 요청을 읽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편집자의 위상을 재평가하고 지성사의 맥락에 따라 그 정당한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한 시대의 사상이 주요 텍스트로서 사회적 논의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배경에 숨어 있는 편집자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사상사를 이해하려는, 새롭고 다부진 시도이다. 텍스트의 사회화 과정에서 편집자가 선 위치, 그리고 급변하는 출판 환경은 어떤 편집자를 요구하는가? 이러한 시도의 배경에는 두 가지 질문이 역설적으로 얽혀 있다. 즉, 사상사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한 ‘편집자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하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한 번의 세기 전환점이자 시장의 자유가 맹위를 떨치고 정보의 독점이 해체되는 오늘날 과연 ‘누가 편집자로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두 질문이 이 책을 크게 2부로 나누고 있다. 제1부(편집자란 누구인가?)에서는 독일 프로테스탄티즘 사상사에 새로운 지적 운동의 충격이 시작되던 시기의 대표적 편집자와 주요 출판사들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그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례들을 검토하고 있다. 더욱이 단순히 사상의 텍스트를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편집자들의 활동만이 아니라, 당시 첨예한 국제정세와 신학계의 논쟁거리들을 둘러싸고 편집자가 정치적 행위로서 어떻게 지식을 촉진하고 현실 세계에서 실천을 촉진할 수 있었는가 하는 사례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첨예하게 맞선 편집자들의 적극적 실천들, 그리고 신학사전의 편찬과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응했던 과정들도 흥미롭게 살피고 있다. 2부는 시장과 내셔널리즘, 그리고 익명의 대중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20세기 후반기 이후 들이닥친 출판사와 편집자의 정체성 위기를 ‘익명의 편집자’에 대한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라는 대답으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지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저자의 사상과 시대의 요구가 상호비판적으로 만나도록 촉진하는 지식의 프로모터, 곧 편집자란 존재의 시대적 의미와 출판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간 출간의의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주로 빌헬름 제정기 말 이후 바이마르 시기에 걸친 독일 사상사이다. 한마디로 사상의 격변기에서 당대 새롭게 위상을 얻은 편집자들을, 사상의 텍스트를 사회화하는 존재로서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한 시대의 편집자는 텍스트라는 구체적 대상과 역동적으로 대화하면서 하나의 ‘사상 그 자체가 되어’ 생산적인 지적 운동을 촉진한다. 이러한 시각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 출판계가 맞닥뜨린 여러 가지 도전과 난제들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과연 이 책이 다루는 시기의 편집자들과 출판사에 비교해볼 때, 오늘날 편집자들은 어떠한 지성의 프로모터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편집자로서 그 위상은 오늘날 한국 지성계에서 온당히 평가되고 있는가? 출판의 대중화가 불러올 수 있는 새로운 지식?정보 세계의 흐름 속에서 편집자는 스스로 그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출판과 편집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 편집자 그리고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토론의 자료로서 이 책이 때맞춰 출간된 것에 대하여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