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글턴은 테러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신과 자유, 또는 숭고와 같은 서구 문명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었던 개념들을 하나하나 살펴 나간다. 언뜻 보면 테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이들 개념 속에는 일종의 ‘양가성’이 숨어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얼굴 뒤에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이면이 처음부터 배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문명과 야만은 실로 오랜 적대자이면서 동시에 가까운 이웃이었으며, 인류가 문명 진화와 함께 야만을 휘두를 더욱 세련된 기술들을 발전시켜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양가성의 첫 예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와 테세우스 간의 대립을 꼽고 있다. 광적 주신제에 도취된 디오니소스와 그의 신도들을 이성의 이름 아래 폭력적인 방식으로 억압했던 테베의 왕 테세우스는 결국 그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테세우스의 예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양가성을 적절히 다루었던 그리스인들의 대처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일 터이다. 이성(테세우스)과 비이성(디오니소스)의 대립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부딪침이 양산한 것은 결국 파멸에 다름 아니었음을 이글턴은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이글턴은 중세의 신과 근대의 법 개념에도 모두 자비로운 동시에 위협적인 두 얼굴이 들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법을 단순히 억압적인 거부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순진하고 극단적인 좌파들도 비판한다. 단순하게 법을 경멸하는 이들은 합리적인 법 내부에 비이성이 숨 쉴 수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 안에 약자를 보호하는 따뜻함도 있다는 사실, 즉 법의 양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글턴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이성과 비이성, 혹은 문명과 야만, 그 어느 한 편도 들 수 없되 그 모두의 면모를 발견하고 이해하게 된다. 즉 문명 내부에 이미 테러가 도출될 만한 뇌관이 장착되어 있으므로 그 뇌관을 제거하는 것, 프로이트의 용어로 말하자면 문명 안에서 그것을 ‘승화’시키는 것이 과제로서 도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