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살인마로부터 살아남은 여자들 ‘파이널 걸’
생존 이후 그녀들의 삶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 이다혜 기자 추천
★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11개 언론 선정 ‘놓칠 수 없는 여름 필독서’
파이널 걸, 공포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
그녀들에게 진정한 엔딩 크레디트는 없다
‘파이널 걸’은 공포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성경험이 없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미심쩍은 장소에 오게 되었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벌이는 살인마를 긴 사투 끝에 죽여서 그 살인 광기를 멈추는 것까지가 파이널 걸의 클리셰로 알려져 있다. 1980~200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등 파이널 걸 문법에 충실한 슬래셔 영화들이 흥행했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은 ‘그럼 영화가 끝난 후 그녀들의 삶은?’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레드 레이크 캠프의 카운슬러 여섯 명이 캠프 운영 시즌을 끝내고 파장하던 중에 살해됐다. 범인은 낫, 전동 드릴, 활과 화살, 마체테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는데, 자칫하면 일곱번째 희생자가 생길 뻔했다. CNN 자막에 의하면 스테퍼니 푸가티라는 이름의 열여섯 살 소녀가 건초보관용 다락 바깥으로 그를 떠밀어 살아남았다. 범인의 신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테퍼니의 학교 앨범 사진은 화면에 떠 있었다. 맑은 피부에 동그란 얼굴, 치아교정기를 하고 미소를 지은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는 어젯밤부로 다시는 예전처럼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파이널 걸이 된 것이다. (본문 14p)
줄리아는 정치학과 대학원생 같은 태도로, 힙스터 앞머리에 아이러니한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매릴린은 흑갈색 머리에 몸이 풍만하고 꼭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텍사스 주부처럼 치장했다. 헤더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다리, 툭 튀어나온 팔꿈치, 딱지투성이 무릎을 기부 물품 상자에서 주워 입은 옷으로 겨우 감싸고 있다. 대니는 여자로 태어난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보였다. 우리 중 누구도 같은 방에 있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본문 33p)
소설의 주인공인 파이널 걸 6인은 심리학자인 캐럴 박사의 주도하에 16년간 정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모임명은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자신이 죽을 뻔한 장소인 캠핑장을 사들여 범죄 피해 여성의 자립을 돕는 에이드리엔, 살인마로부터 친구를 지키려다 하반신 마비를 얻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계속해온 줄리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린 대니, 거대 부호 집안과 결혼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매릴린, 술과 약물 중독과 빚더미로 고생하는 헤더, 그리고 자신의 일가족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소녀에서 이제는 중년의 여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존 강박에 시달리는 리넷까지. 그러던 중, 에이드리엔이 운영하는 그 상징적인 캠핑장에서 다시 무차별 살인이 발생했고, 유일한 생존자가 나왔다. 16세의 스테퍼니 푸가티, 새로운 파이널 걸의 탄생이었다.
파이널 걸의 삶, 가장 처참한 순간에 한번 더 걷어차이는 것
무참히 밀려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강인한 여성 연대 서사의 탄생!
파이널 걸들이 맞서 싸운 살인마는 친오빠, 남자친구, 펜팔 친구, 우연히 알았거나 혹은 아예 일면식 없는 남자들이었다. 그 남자들은 식칼과 낫과 망치 따위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어느 일가족을, 기숙사의 친구들을, 이웃의 반려동물을, 자신을 제지하러 달려드는 경찰과 의사를 잔인하게 죽였다. 그 살인 광기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살인을 저지른 남자는 다들 비슷하게도 감형을 받고, 슬래셔 영화의 아이콘이 되고, 추종자들의 환호를 받는다. 살아남은 여자는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자책하고, 언론과 대중의 저급한 관심에 시달리고, 어째서 너만 살아남았느냐는 잔인한 시선을 견디며 삶을 조각조각 이어나간다.
그는 질리언의 몸에, 부모님의 몸에 온갖 짓을 했다. 시나리오대로 뼈에서 고기를 발랐다. 리키가 아빠에게 집중하던 순간 나와 엄마의 눈이 마주쳤고, 엄마는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리키가 그걸 보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엄마는 리키에게 달려들었다. (…) 해가 떴을 때 리키는 우리 가족으로 만든 피웅덩이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토미의 몸이고 어디부터가 아빠의 몸인지 알 수 없었다. 질리언은 그래도 알아보기 쉬웠다. 그는 질리언의 머리를 내 맞은편 벽난로 선반에 올려놨다. (본문 218p)
나는 그 소녀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알고 있다. 영화 계약이 체결되고 그 영화 시리즈가 망한다. 병원에 갇혀 정신치료를 받으며 어둠이 무섭지 않은 척하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대학 입시 원서를 작성한다. 이런저런 토크쇼를 순회한다. (…) 죽은 친구들의 부모들이 ‘왜 네가 죽지 않았지?’라고 묻듯 보내는 눈빛을 견딜 수 없어 동네를 떠난다.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의 불길을 걸으며 자신을 따라다니는 스토커들의 이름을 알게 된다. (본문 16p)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게 된 참혹한 사건으로부터 생존한 이들의 정기 모임은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한때 서로를 굳게 지지하고 보호해주는 곳이었으나 언젠가부터 그 유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마치 이 모임을 잘 아는 누군가가 그 균열에 쐐기를 박듯 예리하고 정확하게 이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 같다. 게다가 또다시 벌어진 대량 학살, 그리고 새로운 파이널 걸의 탄생. 다시 한번 생존의 시험대 위에 놓인 파이널 걸들의 연대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느슨해진 손들을 다시 맞잡고 미치광이 살인마의 광기를 막아낼 수 있을까?
능란하게 뒤섞인 공포와 유머 위로 서늘하게 떠오르는 진짜 현실들
영리하고 섬세한 설계 위에 밀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그래디 헨드릭스
그래디 헨드릭스는 미국심령연구회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영화 시나리오와 문화비평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다 ‘이케아’를 연상시키는 창고형 가구매장을 배경으로 한 호러 소설 『호러스토어』를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공포·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해박함과 재치 있는 비틀기, B급 정서와 레트로적 요소를 다루는 대가적 솜씨, 일상과 코미디를 현실감 있게 그리는 능력을 바탕으로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의 호평과 함께 영상화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대표작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과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을 포함해 주요 장편 네 작품이 치열한 경쟁 끝에 전부 영상화 계약을 마쳤다.
이른바 슬래셔, 혹은 ‘파이널 걸’ 영화는 고기 분쇄기 같은 것이다. 한편에서 제작자와 제작사 대표들이 기계를 돌리면, 다른 편에서 남성 팬들이 침을 흘리며 그 폭력적이고 성적인 판타지를 덥석 받아먹는다. 포르노 고어 관중들이 간과하는 것은 이러한 영화들이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이 남성에게 짐승 취급을 당하고 얻어터지고 살해되거나, 혹은 친구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사건들 말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는 점점 강렬해지고 주류가 되어 아무도 이 유독한 나무의 뿌리에 놓인 악취나는 여성들의 시체를 지적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런 시도를 할라치면 재미를 망치는 고루한 인간이라는 비난을 산다. (본문 61p)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은 공포영화의 유명한 공식인 ‘파이널 걸’을 소재로 여성에 대한 잔혹한 범죄 문제를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신랄하게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슬래셔/공포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위에 파이널 걸 6인과 그 주변 인물을 섬세하게 설계하고,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을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