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역사

발터 샤이델
768p
Where to buy
Rating Graph
Avg3.7(16)
Rate
3.7
Average Rating
(16)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이 우리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딜레마, 불평등의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통찰한다.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며, 부와 소득이 더 집중된다. 경제 위기도 평준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금융 위기는 역효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은 평화적인 평등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안정은 다양한 사회와 각기 다른 발전 수준을 망라해 경제적 불평등을 편애했다.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빈부 격차를 좁히는 데는 격렬한 충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결국 20세기 후반 이후 지금까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변화의 배후에 있는 추진 동력은 대압착 이후의 국가 간 관계 및 세계 안보의 진화를 반영한다. 폭력적 충격이 글로벌 무역망을 파괴하고 사회적 결속과 정치적 화합을 북돋우고 공격적인 재정 정책을 지속시킨 반면, 폭력적 충격의 완화는 소득 분산과 부의 집중에 대한 견제를 약화시켰고, 다시 불평등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Rating Graph
Avg3.7(16)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Author/Translator

Comment

5

Table of Contents

그림과 표 목록 감사의 글 서문: 불평등이라는 도전 과제 1부 불평등의 역사 01 불평등의 탄생 02 불평등의 제국 03 불평등의 기복 2부 전쟁 04 총력전 05 대압착 06 산업화 이전의 전쟁과 내전 3부 혁명 07 공산주의 08 레닌 이전 4부 붕괴 09 국가 실패와 체제 붕괴 5부 전염병 10 흑사병 11 대유행병, 기근 그리고 전쟁 6부 대안 12 개혁, 불황 그리고 대의권 13 경제 발전과 교육 14 만일 이랬다면? 역사로부터 반사실로 7부 돌아온 불평등과 평준화의 미래 15 우리의 시대 16 우리의 미래는? 부록: 불평등의 한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Description

우리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딜레마, 불평등 그 폭력의 역사 1. 억만장자가 몇 명 있어야 세계 인구 절반의 순자산과 맞먹을까? 2015년에는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이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 명의 개인 순자산을 합친 것만큼 소유했다. 전년도(2014년)에는 그 문턱을 통과하는 데 억만장자 85명이 필요했고, 아울러 그리 오래 전도 아닌 2010년에는 지구상 나머지 절반의 자산을 상쇄하려면 388명이 자기의 재원을 그러모아야 했다. 서두에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며, 부와 소득이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물론 빈부 격차는 국가 간 차이도 있을 수 있고, 한 국가 내에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평화스러운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물질적 불평등은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소용되는 최소한도 이상의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필요로 한다. 잉여란 수만 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으며, 그것을 불균등하게 나눌 채비가 된 인간들 역시 항상 있었다. 옛날 마지막 빙하기의 수렵·채집인은 시간과 재물을 할애해 어떤 개인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호화롭게 매장했다. 그러나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부를 창출한 것은 바로 식량 생산―농경과 목축―이었다. 불평등의 증가와 지속은 충적세(沖積世)를 규정하는 특징이 됐다.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으로 생산 자원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런 자산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기 위해 사회 규범이 발전했고, 여기에는 후손에게 그것을 전해주는 능력도 포함됐다. 이러한 조건 아래 소득과 부의 분배가 다양한 경험에 의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건강, 결혼 전략과 번식 성공, 선택적 소비와 투자, 대풍년, 메뚜기 떼와 우역(rinderpest, 牛疫: 소나 그 비슷한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옮긴이) 등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재산을 결정했다. 운과 노력의 산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불균등한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체제가 물질 자원의 배분과 노동 결실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고안한 개입을 통해 막 고개를 쳐들던 격차를 고르게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전근대 사회가 실제로 시행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진화는 일반적으로 현실에서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식량의 가축화는 또한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었다. 고도로 경쟁적 조직 형태인 국가의 형성은 소득과 부에 대한 접근 기회를 편중시키는 가파른 권력 위계와 강제력을 구축했다. 정치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증폭시켰다. 대부분의 농경 시대에 국가는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의 배를 불렸다. 급료와 공공 서비스 혜택에서 오는 이익은 부패, 갈취, 약탈로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전근대 사회는 성장과 더불어 최대한 불평등해졌고, 낮은 1인당 생산량과 최소 성장이라는 조건 아래서 소수 엘리트들이 잉여를 전용하는 한계를 시험했다. 그리고 좀더 온건한 체제가 더 왕성하게 경제 발전을 촉진할 때―이는 부상 중이던 서구에서 가장 두드러졌다―높은 상태의 불평등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도시화, 상업화, 금융 부문의 혁신, 갈수록 세계적 규모를 갖추어 가는 무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업화는 자본 소유자들에게 풍성한 수익을 안겨줬다. 노골적 권력 행사에서 비롯된 지대(rent, 地代)가 줄어들어 엘리트를 살찌우던 전통적 원천이 차단되자 좀더 안전한 재산권과 국가 공약이 세습적인 개인 자산의 보호를 강화했다. 경제 구조, 사회 규범 및 정치 제도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여전히 높거나 아니면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았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은 평화적인 평등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안정은 다양한 사회와 각기 다른 발전 수준을 망라해 경제적 불평등을 편애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처럼 파라오의 이집트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에서도 그러했다.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빈부 격차를 좁히는 데는 격렬한 충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 요컨대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들을 ‘평준화의 네 기사(騎士)’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성경의 4인방처럼 “땅에서 평화를 거두”고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과 들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이것들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협력하며 현대인에게 흔히 묵시록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결과물을 양산했다. 수억 명이 이것들의 뒤를 따라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태가 잠잠해질 때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었다. 가끔은 극적일 정도였다. 2. 일본은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38년 이 나라의 ‘1퍼센트’는 총 신고 소득의 19.9퍼센트를 벌어들였다. 그다음 7년 안에 그들의 점유율은 3분의 2가량 떨어져 6.4퍼센트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런 손실의 절반 이상은 최상층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0.1퍼센트가 유발했다. 그들의 소득 점유율이 같은 시기 9.2퍼센트에서 5분의 4가량 떨어져 1.9퍼센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런 소득 분배의 변동이 아무리 급작스럽고 심각했다 해도 엘리트의 부가 훨씬 더 극적으로 무너진 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1퍼센트 재산의 실질 신고 가격은 1936~1945년 90퍼센트, 1936~1949년 거의 97퍼센트 떨어졌다. 전체 재산 중 상위 0.1퍼센트는 훨씬 손해를 많이 봤다(각각 93퍼센트와 98퍼센트 이상). 이런 사실들은 국민소득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1930년대 후반 0.45~0.65 어디쯤이었다가 1950년대 중반 0.3 근처로 떨어졌음을 통해서도 상류층의 소득 및 부 점유율의 위축이 심대했을 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평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완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엄청난 살육과 파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험은 정말 전형적인 경우였을까? 다른 대답이 필요 없다. 무조건 ‘그렇다’이다. “드라마 같은 30년간의 전쟁”이라고 샤를 드골이 말했듯이 1914~1945년은 모든 선진국에 의미 있고 가끔은 극적인 소득과 부의 분산을 낳았다. 즉 근대 대중 전쟁과 그 전쟁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재정적 요소 및 결과가 유례없이 강력한 평준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는 양차 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첫 번째 전쟁으로 자본금의 3분의 1이 파괴되고 국민 가계 소득의 자본 소득 비중은 3분의 1로 떨어졌으며 GDP 또한 동일한 비율로 추락했다. 그리고 1920년대 중반 무렵 최대 0.01퍼센트 재산의 평균 가치는 전쟁 이전 수준에 비해 4분의 3 이상 떨어졌다. 엘리트의 재산 붕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자본금의 3분의 2가 소멸했는데, 첫 번째 전쟁 때 수축률의 2배에 달했다. 프랑스 최대 재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국외 자산이 증발했으며, 상위 소득 점유율은 이 시기에 급격하게 떨어졌고, 이어진 전후 인플레이션은 단 몇 년 만에 공채의 가치와 전쟁 채무를 무너뜨렸다. 상위 0.01퍼센트의 재산 가치는 결과적으로 1914~1945년 90퍼센트 훨씬 넘게 떨어졌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국부의 14.9퍼센트를 잃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다시 18.6퍼센트를 잃었다. 소득 상위 0.1퍼센트의 문턱은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평균 소득의 40배에서 20배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30배에서 20배로 떨어졌다. 세금 공제 후 상위 소득 점유율의 하락세는 한층 더 두드러졌다. 요컨대 1937~1949년 상위 1퍼센트는 거의 절반, 상위 0.01퍼센트는 3분의 2가 떨어졌다.

Collections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