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 소진된 영혼을 위한 치유의 철학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자본, 정보, 네트워크…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건만 사람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스펙을 쌓아 몸값을 높이고 욕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극대화하느라 분주하다. 잠시만 멈칫해도 주변의 상황이 순식간에 변하고 한순간 뒤쳐지면 곧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되리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성과를 강요하고 자기를 착취하며 만성 피로에 젖어 탈진하거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과 분노, 무기력이 만연한 이 시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과연 건강한 정신을 가진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낯설지 않은 물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는 당대 문명에 내재한 불안정의 원인을 ‘활동하는 자’, 즉 과도하게 일하며 부산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풍토로 적시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니체가 예언한 ‘새로운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니체가 말하는 평온의 결핍, 새로운 야만, 부산함, 활동하는 사람에 대한 높은 평가, 관조의 회복 등은 우리 시대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가 제안한 사색하는 삶, ‘한가로운’ 사유 공간의 복원은 오늘날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소진 시대의 철학》은 니체 철학 연구자로 철학심리치료와 심층심리학에 오랜 시간 천착해온 철학자 김정현이 흔히 성과 사회, 피로 사회, 불안 사회, 분노 사회, 위험 사회 등으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사회를 ‘소진 시대’라 진단하면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수많은 문제와 그 원인, 해결책을 사유한 궤적을 담은 결실이다. 문제적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우리 시대의 병리 현상을 ‘자아신경증’이라 규명하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 어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지 니체의 사상을 기반으로 폭넓게 성찰해나간다. 그가 제시하는 소통과 치유의 철학,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꾸리기 위한 사유의 방법을 함께 음미해보자.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에서는 저자 자신이 직접 체험한 20세기 이후 글로벌 시대의 변화와 그로 인한 문제 상황들을 포착하고 분석한다. 그런 다음 2부에서는 세계화 시대의 문제들, 즉 성과 사회와 피로 사회의 부산물인 불안과 자아신경증, 소진 사회 및 정보화 사회의 부산물인 자아도취적 몰두에 대해 살피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삶만큼 중요한 문제인 죽음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 죽음이 범속화되는 오늘날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고민해본다. 3부에서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전개된다. 대지와 몸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의 문제를 에쿠멘 윤리로 다루고, 행복과 관련해 마음 테라피를 다루는데, ‘살림’과 ‘치유’의 사상이 이를 관통한다. 여기에 저자가 직접 완성한 열두 점의 판화 작품이 오랜 시간 치열하게 성찰해온 사유에 여운을 더한다. 세계화 시대, 인간과 세계의 분열, 사라진 사유 자본주의적 욕망 기계로 전락한 개인 저자는 가장 먼저 ‘현대의 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21세기를 전후로 우리가 맞이한 변화는 규모 면에서나 속도 면에서나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영역에 세계화, 지구지역화, 신자유주의, 새로운 형태의 서구 제국주의 등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새로운 물결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해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더구나 산업화와 근대화에 뒤처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자 선진 사회를 이끌어나가려 했던 한국 사회는 그러한 광풍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무수한 변화 중에서도, 실증주의적 지식과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해석학적 지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보 상품의 가공, 즉 지식의 상품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보화 시대로의 변화는 특히 두드러졌다. 이제 철학적 지식과 사유가 정신과 인격의 도야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은 명분을 잃고 지식은 그저 교환되기 위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수단이 되었다. 이렇게 지식을 상품화하며 실용적 지식만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철학의 본래 역할은 폐기되고 말았다. 사회 구성원 역시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을 잃고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적 욕망 기계가 되어 점차 병들게 된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이러한 인문 정신의 위기를 시급히 극복해야 할 현대의 위기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 구성원과 공유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는 한편 철학과 인문학이 사변적 학문이나 상품으로서의 지식을 벗어나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의 위기 문제는 기술공학이나 경제학적 언어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인간적 삶에 대한 성찰적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러나 철학이나 인문학 역시 학문을 위한 학문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있는 인간의 현실에 적극 참여하며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살아 있는 학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변적 언어 게임의 미로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에 관한 새로운 화용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32쪽) 이것은 인간과 자연(환경 세계), 인간과 인간(사회 세계), 나와 나(내면 세계)의 관계가 살아 있는 생명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적으로 자각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상 세계에 깨어 있는 정신으로 참여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서 있음을 뜻한다. 나의 정신적 생명의 자각은 세계와 소통하는 나의 인간적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서, 즉 내가 나와 타인을 인격적으로 배려하고 존경하는 삶의 태도를 성숙시키는 데서, 인간이 인간답게 되어 인류 앞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54쪽) 현대사회의 공통된 질병 ‘자아신경증’ 사색적 삶과 영혼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렇게 세계화 시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살핀 저자는 성과 사회,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병리 현상을 ‘자아신경증’으로 규명하며 그 증상과 원인, 이를 치유할 방법을 다각도로 논한다. 자아신경증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과잉 활동과 정신적 탈진, 사색 능력의 상실, 그로 인한 내적 불안과 고립, 무력감과 긴장, 상실감, 공허함 등을 ‘나는-누구인가-신경증’으로 진단한 독일의 현대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의 개념을 차용해 발전시킨 것이다. 현대인은 삶의 의미나 자기 존중감, 자기 존재 의식 등을 둘러싼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자신과 정신적으로 관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의 약화는 현대인에게서 두드러져 보인다. 현대인은 분주함과 부산함, 자아 몰입과 무정신성, 자아의 약화와 관계의 불통 속에서 고통을 느낀다. 슬로터다이크는 현대인의 문제를 ‘자기 관계성Selbstbezuglichkeit’의 위기로 규정하며, ‘나는-누구인가-신경증Wer-bin-ich-Neurose’이라고 부른다. (75쪽) 과잉 활동을 요구받고 닦달당하는 현대인은 성과와 피로 사이의 경계선에서 탈진하게 된다. 부산하고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성찰적 자아의식이 없는 자기 몰입의 활동(무정신성)은 자아신경증을 유발한다. 자기 긍정감의 결핍이나 자기 존중감의 결여는 한편으로는 이기적 자아 몰입을,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유아 도취적 자아과잉증후를 초래한다. 에리